22장. 유월절
예수님은 유월절 만찬을 통해 새 언약을 세우신다.
그러나 같은 자리에서 제자들의 부질없는 논쟁과 유다의 배신, 베드로의 부인이 이어지고, 결국 예수님은 홀로 체포되어 십자가를 향한 길을 걸어가신다.
중동 문화에서 식탁은 단순한 식사가 아니라 언약의 상징이다. 예수님은 배신을 아시면서도 유다에게 떡을 건네신다. 곧 흩어질 제자들에게도 식탁을 여신다. 공동체가 깨어지는 그 자리에서조차, 예수님은 끝까지 손을 내미신다.
“이것은 너희를 위하여 주는 내 몸이라. 너희가 이를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누가복음 22장 19절)
“너희를 위하여”: 공동체 전체를 향한 헌신,
“내 몸을 준다”: 깨어짐과 희생,
“기념하라”: 단순한 회상이 아닌 공동체가 기억하며 살아내야 할 삶의 방식
성찬이 개인의 구원을 넘어서 관계, 연합, 용서의 자리가 되어야 한다.
성찬은 죄인을 위한 자리다. 그 떡은 조건 없는 은혜이며, 다시 돌아오라는 권유다.
성찬은 반복되는 예식에 머무르지 않고, 공동체의 관계를 다시 이어주는 선언이 되어야 한다.
교회 안에서 끊어진 관계들, 자신이 더 높다며 은근히 자랑하는 마음들, 말없이 멀어진 지체들, 함께 걷다 흩어진 이들을 기억하고 돌아오길 바라고 권유하는 것. 그것이 성찬의 정신이다. 복음은 깨어진 자리에서 시작된다. 그리고 그 자리에는, 예수님이 먼저 찾아오신다.
기도
주님,
교회 안에서조차 자랑하고 싶은 마음,
조건에 따라 사람을 구분하고 가려 사귀려는 마음이 있습니다.
관계에는 적절한 거리도 필요하지만, 그것이 관계의 포기가 되지 않게 하옵소서.
조금 더 배려하고, 협력하며, 서로를 위해 기도하는 공동체가 되게 하소서.
지금까지 성찬을 개인적인 구원만 생각해 왔습니다.
이제는 공동체의 연합을 위한 성찬이 되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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