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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화 [교회 5부] 은사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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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화 [교회 5부] 은사

집사 K 2026. 6. 29. 00:14

고린도전서 15장
고린도 교회 안에는 신령한 현상과 연관된 은사들이 존재했다. 
바울은 이 다양함이 성령으로부터 나왔음을 이해하고 그대로 인정한다. 
은사 자체는 문제가 아니다. 그러나 은사가 다른 사람보다 우위에 서는 특별한 도구가 되는 것을 경계한다. 

몸과 지체의 비유가 나온다.
우리 몸에 불필요한 부분이 없는 것처럼, 교회 구성원인 각 성도의 은사와 재능은 모두 다르지만 모두 귀하다. 각각 고유한 기능을 수행하면서도 전체와 분리될 수 없는 상호 의존적인 관계다. 어떤 은사든, 모두가 동등하게 중요하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균형이다. 균형을 이룰 때 몸은 온전히 성장하고 건강하게 지낼 수 있다. 반대로 어느 하나가 튀어나와 다른 것을 억누르는 것은 불균형이다. 각자에게 맡겨진 바를 존중하고 인정하는 태도가 건강한 공동체의 필수 요건이다.

교회 안의 은사는 신앙의 기술이나 재능일까? 
만약 은사가 그런 것이라면 그 사람 자체가 교주가 되어 사람들을 현혹할 때나 유용할 것이다. 그래서 은사를 그런 용도로 사용하는 사람은 경계해야 한다. 근거는 아래와 같다.

은사의 원어 Charisma 
'카리스마'는 본래 '값없이 거저 주어진 선물'을 뜻한다. 
흔히 말하는 '카리스마 있다'는 그 단어의 어원이다.
그렇다면 이 헬라어는 나를 세우기 위함이 아니라 공동체를 섬기라고 주어진 이타적인 능력이라고 해석하는 데 이견이 없을 것이다. 

카리스마라는 단어가 훗날 대중을 압도하는 비범한 매력을 지닌 것을 상징하게 되었다는 점이, 고린도교회에서의 은사에 대한 오해와 비슷하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현대 사회는 자신을 낮추는 겸손을 향해 카리스마가 있다고 말하지 않는다. 적어도 어떤 분야나 집단에서 확고한 권위를 은근히 드러내면서 낮은 겸손을 보일 때에 카리스마라는 이름을 허용한다. 권력이 없는 사람이 행하는 겸손에는 쓰지 않는 표현이다. 그렇다면 카리스마, 즉 은사는 내 능력으로 쟁취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거저 빚진 것'이기에 나를 과시할 수 없다는 논리가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그러므로 은사의 1차 목적은 개인을 과시하는 것이 아니라, 공동체를 함께 만들어가는 섬김에 있다. 

사회의 다른 일방적인 봉사와 다른 것은, 그 섬김의 방향이 하나님을 알기 위한 최종 목적에 있기에 하나님을 알아가는 행위가 그 섬김의 바탕에 모두 깔려 있다는 점이다. 여기서는 교회 안의 이야기이기 때문에, 어느정도 신앙의 이해가 있는 사람들끼리의 균형있는 섬김으로 이루어지는 교제를 다룬다. 

교회 안에서 우리는 본질적으로 그리스도께 빚진 자들이다. 그것은 우리 사이에 높고 낮음이 없다는 것을 떠올리게 한다. 
각자 다양한 신앙의 은사와 색깔과 향기가 있다. 심지어 무색무취는 오히려 신앙이라는 세계와 어울린다.
그리스도께 진 빚을 공동체의 지체들에게 사랑으로 나누고, 나아가 공동체 안에서 나 또한 누군가에게 의지하는 마음을 회복하는 것. 내가 완벽하지 않음을 인정하고 타인에게 기꺼이 빚을 지며 기대어 보는 것. 그것이 고린도전서가 말하는 상호 의존이며, 모두가 지녀야 할 겸손이 아닐까 생각한다. 

고린도전서 16장
바울은 상대에게 맞춤형으로 적절한 이야기를 하는 대화의 은사가 있다. 
그의 대화법은 편지의 형식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편지를 읽는 수신자는 비록 지적을 받더라도 명쾌하면서도 따뜻한 지침으로 받게 될 것으로 보인다.

편지라는 매체는 받는 이의 의지와 상관없이 전달되지만, 그렇다고 강제적이지 않다. 읽는 입장에서 봉투를 열어서 애써 읽지 않으면 전달되지도 않는다. 메시지의 수용 여부에 대한 결정권은 수신자에게 있다.
이 점에서 인간에게 주어지는 하나님의 말씀 또한, 이런 구조에 가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리 좋은 내용이어도 봉투를 뜯는 수고를 하지 않거나, 확인하지 않으면 그만이다. 하지만 수신자를 향한, 그 누구보다 사랑하는 마음을 담은 내용이라면, 그 또한 생각지도 못한 선물이다.
바울의 이 편지는 읽는 이에게 선물과 같은 은혜가 되고, 이 또한 은사라고 할 수 있다.

수신자인 고린도 교인 각자의 재능이나 특출남이 아니라, 그들을 누구보다 사랑하며 하나님의 뜻대로 살기 바라는 이 말씀이 그들의 가장 큰 은사이다. 말씀에서 비롯된 교회 안에서의 활동이라면, 겸손과 교만을 따질 것도 없는 선물과 같은 은사가 된다.

온기는 특출나다고 표현하지 않는다. 은사도 마찬가지로 특출나지 않다. 
특출난 것은 인간이 극복할 수 없는 그 죽음의 위엄조차 관통하는 부활의 신앙뿐이다. 하지만 특출나지 않다고 해서 온기가 하찮다고 할 사람은 없다. 

은사는 분류할 수 있는 게 아닐지도 모르겠다. 인간은 서로 조금씩 온도가 다르다. 하지만 함께 있을 때 온기는 더 따뜻하게 다가온다. 은사는 얼핏 다른 개성으로 보이지만, 결국 누구에게나 있다. 그리고 온기는 화려한 무대가 아니라 일상에서 가장 잘 드러난다. 은사 또한 그래야 한다.

은사는, 받고자 다가오는 사람에게 전달될 수 있는 공동체라는 공간에 머문다.

이 글의 원형 고린도전서 15장

이 글의 원형 고린도전서 16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