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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화 [바울의 수사학 3부] 루스드라 본문

묵상_칼럼 [누가복음에서 사도행전, 인문학적 고찰]

17화 [바울의 수사학 3부] 루스드라

집사 K 2025. 10. 12. 17:09

어느 날, 한 사건이 루스드라의 광장을 들끓게 만든다.
바울이 걷지 못하는 사람을 일으킨 것이다.

사람들은 흥분했고, 바울과 바나바를 신으로 여겼다
“바나바는 제우스요, 바울은 헤르메스다!”

제사장이 송아지를 끌고 와 제사를 드리려 했다.

그들이 바울에게 환호할 때,
바울은 잠시 침묵한 후, 옷을 찢고 사람들 사이로 뛰어들며 소리친다.

“가로되 여러분이여 어찌하여 이러한 일을 하느냐 우리도 너희와 같은 성정을 가진 사람이라 너희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은 이 헛된 일을 버리고 천지와 바다와 그 가운데 만유를 지으시고 살아 계신 하나님께로 돌아 오라 함이라”
(사도행전 14:15)


그는 말보다 먼저 행동으로, 행동보다 먼저 침묵으로 반응했다.
그의 말은 단순했다.
“우리도 사람입니다.”

바울은 루스드라 사람들의 언어를 따라
‘하늘과 땅과 바다를 지으신 살아 계신 하나님’을 말한다.

그들에게는 율법도, 다윗의 언약도 없었다.
그래서 바울은 신학을 설명하지 않는다.
대신 자연과 계절과 먹을거리,
그리고 기쁨을 주신 분이 누구인지 묻는다.

“그러나 자기를 증거하지 아니하신 것이 아니니 곧 너희에게 하늘로서 비를 내리시며 결실기를 주시는 선한 일을 하사 음식과 기쁨으로 너희 마음에 만족케 하셨느니라 하고.”
(사도행전 14:17)

그는 그들의 일상 안에서 하나님을 꺼낸다.
이해할 수 있는 말, 감당할 수 있는 범위만 말한다.

바울은 기적을 설명하지 않았다.
오히려 기적은 그가 말할 수 없게 만드는 요소였다.
기적은 오해를 낳았고,
바울은 그 오해를 걷어내느라 애를 썼다.

기적은 말의 기회가 아니라, 오히려 말의 위기였다.
기적은 오해를 불러왔고, 바울은 그 오해를 걷어내느라 말을 아껴야 했다.
그는 기적이 아니라, 이해할 수 있는 말로 하나님을 드러내려 했다.

사람들은 결국 바울을 거부한다.
유대인들이 와서 선동하자,
그들은 돌로 바울을 치고 도시 밖으로 끌어낸다.
방금 전까지 제사를 드리려 했던 손들이었다.

바울은 말하지 못한 채 쫓겨난 것이 아니었다.
그는 말할 수 있을 만큼만 말했고, 그 이상은 남기지 않았다.

루스드라에서 바울은 말보다 먼저 행동했고,
이해할 수 있는 말만 골라 했으며,
기적을 드러내지 않고 감췄다.

그의 말은 이기려는 말이 아니었고,
감당할 수 있도록 조절된 말이었다.

무엇보다 바울은, 숭배받던 자리에서도
자신이 신이 아님을 말할 수 있을 만큼 자유로웠다.

그는 말로 자신을 증명하려 하지 않았고,
항상 진리를 드러내는 말만 신중히 사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