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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장] 중심에서 내려오기 본문

묵상_에세이 [성경의 서사]/요한계시록

[4장] 중심에서 내려오기

집사 K 2025. 7. 6. 22:02

요한은 문이 열린 하늘을 통해 하나님의 보좌를 보는 환상에 들어간다.

보좌 위에는 무지개와 보석 같은 빛이 둘러 있고, 네 생물과 스물네 장로가 둘러 서서 쉬지 않고 하나님을 찬양한다.
번개와 음성, 일곱 등불과 수정 같은 바다가 그 보좌 앞에 펼쳐지며, 모든 창조물이 하나님을 경배하는 장면은 압도적이면서도 한 가지 중심을 향해 수렴된다.

“전에도 계셨고, 이제도 계시며, 장차 오실 전능하신 이”
(요한계시록 4장 8절)


이 고백 안에는 하나님의 '영원성' 즉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지배하시는 주권, 그리고 전능성이 응축되어 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은 어떤 존재에도 의존하지 않으며, 스스로 존재하시고, 만물의 처음과 끝을 포함하신다.

“주께서 만물을 지으셨고, 주의 뜻대로 존재하게 하셨다”
(요한계시록 4장 11절)


이 고백은 하나님을 창조주로 찬양하는 것이며, 하나님은 존재의 원천이자 존재의 이유 자체다.
 
이는 단순한 예배의 형식이 아니라, 인간이 하나님을 경배할 수밖에 없는 존재론적 이유를 제공하는 말씀이다.
그렇다면,
하나님을 찬양한다는 것은 단지 감탄하거나 입술로 높이는 행위가 아니다.
하나님의 특성을 인식하고, 그에 합당한 자세를 갖추는 것이 참된 경배다.
 
이 말씀을 피조물인 내가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1. 하나님이 전능하시다면, 나는 통제의 집착을 내려놓아야 한다.
2. 하나님이 창조주시라면, 나는 존재에 대한 존중과 책임을 품어야 한다.
3. 하나님이 영원하시고 거룩하시다면, 나는 순간의 충동이 아닌 영원의 질서를 따르는 삶을 살아야 한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찬양한다는 것은, 내 삶의 중심에서 자기 자신을 내려놓는 일로 연결된다.
 
경배란 단지 위를 우러러보는 몸짓이 아니라, 내 안의 보좌에서 내가 물러나는 행위다.
하나님이 계셔야 할 자리에 내가 앉아 있다면, 그 삶은 균형을 잃는다.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회복된 삶은, 그 중심이 하나님을 향해 정렬되어 있다.
그 삶은 억지 절제가 아니라, 본래 자리를 되찾은 평안이다.

하나님을 높인다는 것은 내 기준을 절대화하지 않는다는 뜻이기도 하다.
십자가를 진다는 것으로 표현되는 자기부정이다.
 
기도
갈등이 생길 때, 타인의 관점을 진심으로 살펴보는 게 쉽지 않음을 고백합니다.
상대의 행동보다 관계의 회복이라는 더 큰 질서를 선택하는 지혜를 구합니다.
때로는 말보다 침묵이 더 깊은 예배일 수 있음을 깨닫게 하심에 감사드립니다.
삶의 중심을 비우고, 하나님의 주권 아래에서 내 안에 질서가 회복되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4일 차. 멜테미 능선

밧모섬 남서쪽 돌지형 능선 위
북쪽에서 불어오는 강한 바람, 멜테미가 지나는 길목

멜테미는 보이지 않는 힘이고,
능선은 맞서 서는 자리이다.
기울어 선 나무를 보면, 바람이 지나간 방향을 알 수 있다.
굽은 몸으로 말없이 가리키는 그 방향 속에서,
시련을 피하는 법이 아니라, 건너가는 법을 배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