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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의 문맥
“같은 강물에 두 번 발을 담글 수 없다.”-헤라클레이토스-인간에게 시간은 선형적으로 흐르며 측정이 가능하다. 인간이 세상을 바라볼 때 느끼는 공간감, 거리, 높이와 깊이는 한 순간에 그 거리를 좁힐 수도 없고, 보이는 앞면만 볼 뿐 반대편은 볼 수 없다. 이러한 인간의 인식을 기반으로 수치화하고 조정할 수 있게 만든 대표적인 예가 3D 모델링 프로그램의 X, Y, Z축 개념이다.이런 3차원적 인식에 갇힌 인간에게 시간은 과거에서 미래로 한 방향으로만 흘러가는 선으로 느껴진다. 인간의 삶은 이처럼 무정하게 흐르지만, 이러한 균일한 규칙은 오히려 역사의 연대기 그 이면의 존재를 짐작케 하는 힌트가 되기도 한다.만약 우리가 경험하는 이 3차원 공간 자체를 창조한 신이 존재한다면, 그 신은 우리가 한 번에 볼..
이삭은 눈이 어두워지고 살날이 얼마 남지 않자, 장남 에서에게 사냥 요리를 요청하며 축복을 약속한다. 하지만 야곱이 그사이 에서인 척하여 아버지 이삭을 속이고 축복을 받는다. 뒤늦게 상황을 파악한 에서는 통곡하며 동생 야곱에게 살의를 느끼고, 야곱은 하란 지역 외삼촌 라반의 집으로 피신한다.이삭의 집안에는 두 가지 속임수가 나온다.이삭의 속임수와 야곱의 속임수다. 야곱의 속임수와 과거 이삭이 아비멜렉에게 했던 속임수에 대해 하나님은 다르게 대응하신다. 이삭은 순간적으로 언약보다 자신의 안위를 택했으나 하나님이 곧바로 은혜로 해결해 주셨다. 반면 야곱은 언약의 축복을 위해 주도면밀하게 상대를 속인다. 그리고 이후 야곱은 긴 세월 고난을 겪게 된다.두 속임수에 하나님의 응답은 사뭇 다르다. 그 차이는 무엇일..
창세기 12장에서 아브람이 사라를 누이라고 속였던 일이 이삭과 리브가에게도 그대로 반복된다.12장에서는 오히려 이방 왕이 도덕적으로 더 나은 모습을 보이기도 했는데, 이를 통해 하나님의 약속이 인간의 성실함이 아닌 하나님의 신실함에 달려 있음을 확인했었다. 이제 2대에 걸쳐 아내가 이방인과 동침할 뻔한 위기가 반복된다. 이는 자손 언약의 심각한 위기를 의미한다. 그런데 정작 위기를 자초한 것은 이삭 자신이었다. 실제로 일어나지도 않은 두려움 때문에 미리 거짓말을 했고, 이번에도 거짓말의 대상인 이방 왕 아비멜렉이 오히려 이삭을 보호하는 역할을 맡는다. 이삭의 거짓말은 적대적으로 느낀 권력 앞에서 자신을 지키려는 두려움에서 나왔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나약한 거짓말을 정죄하기보다, 보란 듯이 적대적인 대상..
이삭의 자녀 에서와 야곱은 기도의 응답으로 태어났으나, 각기 다른 두 민족을 상징하며 태중에서부터 다투었다. 이삭은 에서가 사냥한 고기를 즐겼고, 리브가는 야곱을 조건 없이 사랑했다. 어느 날 에서는 팥죽 한 그릇에 야곱에게 장자권을 넘겼다. 에서는 경솔한 인물로 그려진다. 민족을 이어갈 영적 축복을 음식 하나와 바꿀 정도로 가볍게 여겼다는 점이 핵심이다. 가끔 일상 속 갈등으로 예민한 허기가 밀려오면, 고백하는 말과 살아내는 행동 사이의 간극 속에서 말씀을 마주하기 어렵다고 느끼곤 한다. 그래도 시행착오 끝에 말씀으로 채워진 포만감은 세상이 줄 수 없는 평안이라 느낀다. 언제든 넘어질 수 있는 연약함 앞에서, 매일 주어지는 만나로 내면의 허기를 채우는 일상이 되기를 바란다.
175년의 삶을 마치고 막벨라 굴에 잠드신 아브라함을 기억하며. 아브라함께서는 살아생전 화려한 성이나 집에 마음을 두지 않으셨습니다. 대신 가장 비싼 대가를 치러 마련한 무덤을 통해 가나안 땅에 깊이 정착하셨습니다. 막벨라라는 이름의 의미처럼, 그분의 삶은 이제 하나님의 약속 위에 겹쳐져 영원한 안식으로 들어갑니다. 저는 까마득한 후배이자 언약으로 이어진 후손의 자격으로, 믿음의 선배 아브라함을 기리며 그분의 삶이 기록된 말씀을 복기해봅니다. "그의 나이가 높고 늙어서 기운이 다하여 죽어 자기 열조에게로 돌아가매" (창세기 25:8) 이 말씀은 그의 물리적인 죽음을 알립니다. 그러나 그 기운이 다했다는 표현은, 제가 사라의 장례 장면에서 영생의 감각으로 묘사했던 서로 다른 온도가 만나 이루는 고요한 일체..
24장에서 아브라함의 명령을 받은 종은 기도를 하고 즉각적인 응답을 받는다. 종의 기도는 응답이 이루어지기 수월한 장소인 우물가에서 이루어진다. 현장에 나아가 모든 준비를 마친 채 기다리는 기도이다. 여기에는 인간으로서 할 수 있는 모든 준비를 마친 상태에서 기다릴 때 응답이 찾아온다는 원리가 담겨 있다. 간혹 인간의 힘으로 더 이상 할 수 있는 것이 없을 때 기도의 자리로 나아가곤 한다. 그런 경우에는 하나님이 하셨다는 확신이 들기도 하지만, 종은 하나님이 일하시기에 좋은 상황까지 스스로 준비하고 기다린다. 여기에는 장소나 물리적인 준비 외에도 하나님의 약속에 부합하는 맥락이 작용한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것에 맞춰 이곳에 왔습니다”라는 고백처럼, 선행적 응답에 앞선 하나님의 이끄심이 있는 것이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