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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의 문맥
성령은 때가 차면 오시는 분이다. 이것이 내게는 나의 성장에 대한 오랜 기다림의 사랑으로 느껴진다. 1절 15장의 마지막에서 성령이 예수님을 증언하시고 제자들도 성령과 함께 증언할 것이라고 하셨다. 예수께서 이것을 미리 말씀하시는 이유는 제자들이 실족하지 않도록 각오하고 대비하라는 뜻이다. 지금은 예수님이 직접 지켜주시는 방패가 되어 주시지만, 곧 그분이 이 자리에 없을 때 박해의 화살이 제자들을 향하게 될 것임을 예고하신다. 미리 예상할 수 있다면 고난도 어느 정도는 버틸 수 있다. 그리고 그 고난이 오히려 예수님의 예언을 증명하는 믿음의 근거로 작용한다. 물론 고난의 유무가 진리의 필요조건은 아니다. 각 상황마다 고난의 본질을 살펴야 한다. 2절 그런데 제자를 죽이는 박해자들은 그 박해가 하나님을..
와인 문화에서 인상 깊었던 것은 맛을 표현하는 용어의 다양성이었다.단순히 맛이 있고 없고가 아니라 그 미묘함을 구체적으로 정리하는 기준이 있었다. 그리고 그것의 연장선에서 더 인상적이었던 것은 맛을 느낀 후 다시 뱉어내는 ‘스피팅’이다. 이는 격식 있는 분위기와 이질적으로 보이지만, 애호가들이 비매너처럼 보이기까지 하는 그 행동을 하면서까지 ‘단순히 취하지 않고’ 와인을 음미하고 해석하는 일에 얼마나 진심인지를 보여준다. 유월절 밤, 예루살렘 성전 입구에는 이스라엘을 상징하는 화려한 ‘황금 포도나무’ 장식이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겉으로는 화려했지만 열매는 없는 포도나무였다. 그들의 열매는 본질 없는 종교성에 머물렀고, ‘단순히 취하기 위한’ 싸구려 포도주의 재료에 불과했다. 예수님은 그 장식을 뒤로하고..
"그 날에는 내가 아버지 안에,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 있는 것을 너희가 알리라" 예수님은 관계에 대한 존재론적 개념을 말씀하신다. 의미를 찾아 맥락 안에서 원문의 뉘앙스를 따라가 보았다. 1. 진동하는 자아 제자들에게 마음에 진동(타랏세스도)이 일어난다. 이는 각자의 자아를 담고 있던 단단한 껍데기에 외부 충격이 가해지는 상태다. 현실의 이상을 실현해 줄 것이라 믿었던 스승이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근심은, 곧 자신을 지탱하던 보호막이 깨어지는 것에 대한 존재론적 공포다. 이때 예수께서는 장소가 아닌 머무름의 상태인 '거처'를 약속하며 새로운 존재 방식을 제시하신다. 2. 자아의 깨어짐 마리아의 옥합은 깨어짐으로써 그 공간 전체에 향기로 스며들었다. 이 행위는 13장에서 발을 씻기신 예수님의 행..
"내가 주와 또는 선생이 되어 너희 발을 씻었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어 주는 것이 옳으니라." (요 13:14) 여기서 '옳다'에 해당하는 원문 '오페일레테'는 반드시 이행해야 할 채무 상환 의무를 의미한다. 채무의 관점에서 볼 때, 돈을 갚는 목적은 우선 채무자 자신의 재정 상태를 정상화하는 데 있다. 이러한 인식이 없다면 마땅히 갚아야 할 돈을 갚으면서도 이를 베푸는 것으로 착각하여 도덕적 우월감에 빠지기 쉽고, 받는 자는 심리적 부채감에 눌리기 쉽다. 과거에 만난 한 동창은 봉사 활동에서 상대방이 고마워하는 모습에 만족감을 느낀다고 했다. 이는 전형적으로 '빌려주는 관점'에서 행하는 사랑이다. 그러나 성경이 말하는 세족은 빚을 갚는 행위다. 이는 자랑할 만한 호의가 아니라 마땅히 행해야 할 의무다..
옥합이 깨지는 순간 주님의 평강이 흐른다.마리아는 환급성 있는 물질을 현금화할 수 없는 향기로 바꾸어 버린다. 그녀의 가치 저장소를 옥합에서 주님의 자리로 옮겨간 것이다. 사라진 현금을 유다는 아까워했지만, 예수님은 남겨진 향기를 기뻐하셨다. 유다의 이웃 구제가 진심이라 해도, 그보다 본질적인 것은 스스로 옛것에서 벗어나 새 창조로 거듭나는 일에 동참하는 것이다.향기는 곧 사라지겠지만 예수님은 마리아를 영원히 기억하신다.사랑은 계산하지 않고 기억된다.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입성하신다. 사람들은 메시아의 영광을 보며 종려 가지로 환호한다. 그리스인의 방문은 복음의 확장을 예고한다. 이처럼 빛의 자녀가 되는 데 혈통의 조건은 없다. 하지만 시기의 조건은 있다. 빛이 머무는 동안 그 빛을 믿어야 어둠에 붙잡히지..
1. 신적 증명 예수께선 하위 차원의 존재인 인간의 몸으로 상위 차원의 존재인 신의 능력을 보이신다. 그것은 자신이 곧 하나님임을 드러내는 일이다. 오병이어, 물 위를 걷기, 순간적인 이동 모두 물리 법칙과 시공간을 조정하는 상위 차원의 개입으로 가능한 일이라면, 죽음을 되돌리는 것은 더 큰 개입이면서도 같은 차원의 능력으로는 하지 못할 이유가 없는 일이다. 이 모든 사건의 목적은 예수님을 통해 드러나신 하나님의 증명이다. 2. 나사로의 죽음 앞에서 예수님의 눈물. 죽은 자를 살릴 능력이 있다면 죽음을 대하는 일반적 관점에서 눈물을 흘릴 이유가 없다. 죽음 그 자체가 인간에게 미치는 본질에 대한 반응일 것이다. 에덴의 풍성함에서 부패하고 쇠하는 죽음으로 나아가는 모습에 대한 안타까움과 함께 직접 그 무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