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의 문맥

향기의 기억. 요한복음 12장 본문

묵상_에세이 [성경의 서사]/요한복음

향기의 기억. 요한복음 12장

집사 K 2026. 3. 15. 20:44

옥합이 깨지는 순간 주님의 평강이 흐른다.

마리아는 환급성 있는 물질을 현금화할 수 없는 향기로 바꾸어 버린다. 그녀의 가치 저장소를 옥합에서 주님의 자리로 옮겨간 것이다. 사라진 현금을 유다는 아까워했지만, 예수님은 남겨진 향기를 기뻐하셨다. 유다의 이웃 구제가 진심이라 해도, 그보다 본질적인 것은 스스로 옛것에서 벗어나 새 창조로 거듭나는 일에 동참하는 것이다.

향기는 곧 사라지겠지만 예수님은 마리아를 영원히 기억하신다.

사랑은 계산하지 않고 기억된다.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입성하신다. 사람들은 메시아의 영광을 보며 종려 가지로 환호한다. 그리스인의 방문은 복음의 확장을 예고한다. 이처럼 빛의 자녀가 되는 데 혈통의 조건은 없다. 하지만 시기의 조건은 있다. 빛이 머무는 동안 그 빛을 믿어야 어둠에 붙잡히지 않는다. 돈과 평판, 보상에서 자유로워지기는 어렵다. 그러나 지금 이 순간 믿음을 고백하는 마리아의 향기에 더 큰 가치를 두시는 예수님의 관점을 본다.

주님이 무덤으로 향하시듯 하나의 밀알이 되어 대지 아래 깊이 묻힐 때, 죽음이라는 단단한 껍질을 뚫고 비로소 새로운 생명의 싹이 움트기 시작한다.

‘사랑은 계산하지 않는다.’ 이 말을 여러 번 읊조린다. 이 문장이 내 마음을 두드린다. 
조금도 감정적으로 손해 보고 싶지 않아서 예민해지던 내 마음을 설득하고 지침이 되어준다. 

계산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것이 뜻밖에 위로가 된다.
계산하는 마음은 긴장이지만 사랑하는 마음은 이완이다. 평강은 사람들의 거친 마음을 이완시킨다. 

옥합의 향기가 어떤 건지 모르지만, 발가락 사이로 채워지는 진한 기름의 감촉과 복잡한 생각을 이완해 주는 숙성된 향기를 상상해 본다. 말씀이 오감으로 스며들듯 깊게 느껴본다. 기름에 잠긴 발끝의 감각부터 머리끝까지 울리는 진한 향기를 생생한 기억으로 남겨본다. 2,000년 전의 사건이 오늘날 나의 '강퍅한 마음'을 녹이는 현재의 사건으로, 시간을 초월한 향기가 되어 전해진다. 말씀이 여러 감각을 통해 깊게 새겨져, 기억보다 오래가는 내면화로 이어지길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