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의 문맥
포도주와 아몬드 테이스팅. 요한복음 15장 본문
와인 문화에서 인상 깊었던 것은 맛을 표현하는 용어의 다양성이었다.
단순히 맛이 있고 없고가 아니라 그 미묘함을 구체적으로 정리하는 기준이 있었다. 그리고 그것의 연장선에서 더 인상적이었던 것은 맛을 느낀 후 다시 뱉어내는 ‘스피팅’이다. 이는 격식 있는 분위기와 이질적으로 보이지만, 애호가들이 비매너처럼 보이기까지 하는 그 행동을 하면서까지 ‘단순히 취하지 않고’ 와인을 음미하고 해석하는 일에 얼마나 진심인지를 보여준다.
유월절 밤, 예루살렘 성전 입구에는 이스라엘을 상징하는 화려한 ‘황금 포도나무’ 장식이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겉으로는 화려했지만 열매는 없는 포도나무였다. 그들의 열매는 본질 없는 종교성에 머물렀고, ‘단순히 취하기 위한’ 싸구려 포도주의 재료에 불과했다. 예수님은 그 장식을 뒤로하고 스스로를 ‘참 포도나무’라 선언하시며, 진정한 연합과 질 좋은 포도를 위한 가지치기를 말씀하신다.
가나 혼인잔치 이야기에서 예수님은 좋은 포도주를 구분하실 줄 아시는 안목을 보여주셨다. 포도주는 발효 숙성 과정의 초기에는 떫은맛이 나지만 시간이 지나면 깊은 풍미를 낸다. 그 풍미는 가지치기의 정교함과 깊이 있게 연결되어 있다. 에너지를 몰아주기 위해 열매 없는 가지를 제거하는 농부의 단호함은, 역설적으로 살아남은 좋은 열매 하나가 가진 높은 가치를 증명한다.
명품으로 평가받는 ‘귀부와인’은 특정 곰팡이 균에 노출된 환경에서 자란다. 포도알이 곰팡이로 인해 쭈글쭈글해지는 과정을 거치며 특별한 달콤함과 풍미를 얻게 된다. 포도송이마다 부패한 부분을 걸러내고 선별하는 수작업은 고되고 힘들지만, 그 가치는 높이 평가받는다. 그렇게 명품은 포도나무 한 그루에서 겨우 한 잔을 만들어낸다.
이러한 숙성의 또 다른 관점에서, 최근 경험한 ‘아몬드 명상’을 떠올려 본다. 아몬드 한 알을 눈으로 먼저 보고, 향을 맡고, 손으로 만지고, 입에 머금고 천천히 씹어 삼키는 과정은 그 재질을 여러 감각으로 다채롭게 드러낸다. 이 작은 아몬드 안에는 하나의 나무 전체가 응축되어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포도주 테이스팅이 ‘숙성된 결과’를 음미하는 것이라면, 아몬드에는 가공되지 않은 채로 존재하는 ‘압축된 본질’의 풍미가 있었다. 아몬드 표면의 주름은 큰 나무의 껍질이나 나이테처럼 느껴졌다.
성경에서 씨앗은 미래의 가능성을 품은 존재다. 그 안에는 훗날 나무가 되고, 그 나무에 깃들 새들의 안식처까지 내포되어 있다. 서로 거하는 존재론적 관계,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우리 역시 서로 거할 수 있는 가능성을 내재하고 있다. 그리고 그 가능성은 먼저 예수님의 사랑 안에 거할 때 비로소 현실이 된다.
요한복음 속 포도 열매의 개념은 그리스도인에게 적용되는 비유다.
한 사람의 현재를 과거의 결과로만 보는 결정론적 시각도 있지만, 나는 그것에 동의하지 않는다.
그보다는 지난 과거의 배경을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현재의 성숙도를 결정하는 재료가 된다는 목적론에 더 가까운 입장이다. 이러한 목적론을 제시한 개인심리학의 알프레드 아들러는 “현재는 과거를 바꿀 수 있다”고 말했다. 과거의 열등감이나 상처는, 오히려 귀부와인처럼 최고급 와인의 재료가 되기 위한 동력이 될 수 있다. 그리스도인은 고난 속에서 농부의 가지치기의 의도를 읽어내려는 사람들이다.
예수께서는 종들을 ‘친구’로 격상시키셨다. 기존 질서에 익숙한 주인들은 당연히 반발할 것이다. 서로 조건 없이 사랑하는 연합은 이처럼 기존 세계의 질서와 충돌하는 쉽지 않은 일이다. 기득권이나 종교성에 취하기 위한 그 세계는, 예수와 연결된 성도를 거부하며 미움의 대상으로 삼을 수 있다. 그러나 그 과정 또한 미래를 성숙하게 할 ‘현재의 가지치기’와 같다. 농부가 가지치기를 할 때, 각 포도알의 입장에서는 그 의도를 알 수 없다. 그저 잘려 나가는 가지들 사이에서 겪는 직간접적인 고통일 뿐이다. 우리는 세상이 줄 수 없는 보혜사의 위로로 이를 견뎌낸다.
농부는 하나님이시며, 가지인 그리스도인은 본체이신 예수님께 연결되어 있고, 그 사이를 흐르는 매 순간의 공급은 성령의 도우심과 같다. 예수께서 나에게 건네신 그 최고급의 포도주의 기억을 떠올려 본다. 그 잔은 나를 향한 기다림이 담긴 위로였다. 그것이 그분의 피와 같은 가지치기를 거친 희생의 가치임을 다시 마음에 새긴다. 숨겨진 실재인 진리를 오감으로 느끼고 증언하는 삶, 그것이 얼마나 가치 있는지 생각하게 된다. 성령의 진액이 스며드는 순간, 내 안의 시간은 과거와 미래, 그리고 현재까지도 숙성된 포도주의 여운처럼 깊어진다.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이라.” (요 15:4)

묵상을 하며 들었던 곡.
아르보 패르트의 '거울 속의 거울'
정제된 음표가 숙성의 시간과 닮아있습니다.
https://youtu.be/FgAp-KrCxM0?si=NtgHksTNLj6DQVz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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