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의 문맥

기도에 대해. 요한복음 17장 본문

묵상_에세이 [성경의 서사]/요한복음

기도에 대해. 요한복음 17장

집사 K 2026. 4. 18. 14:19

앞선 장에서 진리에 대해 설교하신 예수님은, 이제 그 진리가 현실이 되는 선언이 담긴 기도를 하신다.

1. 예수님 자신을 위한 기도 (1-5절)
“아버지여 때가 이르렀으니 아들을 영화롭게 하사 아들도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게 하옵소서”(17:1)
여기서 영화롭게 된다는 것은 단순한 희망사항이 아니라, 인간으로 세상에 왔지만 이제 본래의 신적 지위로의 회복을 요청하는 것이다. 특히 때가 이르렀다는 선언은 16장에서 말씀하신 내가 떠나는 것이 유익하다는 가르침이 실제 사건으로 바뀌는 것을 의미하며, 언어가 행함과 연결되는 수행적 언어(말하는 것이 곧 행하는 것)의 증거가 된다.

2. 주변의 제자들을 위한 기도 (6-19절)
“내가 그들을 위하여 비옵나니 세상을 위하여 비는 것이 아니요”(17:9)
거룩은 구별이다. 곧 제자들이 세상의 질서와 연합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께 속한 자가 되기를 요청하신다. 그리고 이 기도를 제자들이 곁에서 듣고 있다.

3. 후대의 제자들을 위한 기도 (20-23절)
"내가 단지 그들만을 위해서 기도하는 것은 아닙니다. 나는 그들의 말 때문에 나를 믿게 될 사람들을 위해서도 기도합니다. 아버지 당신께서 내 안에 계시고 내가 아버지 안에 있듯이, 그들 모두가 하나 되도록, 그들도 우리 안에 있도록 기도합니다. 그래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셨음을 세상이 믿게 하소서."(20-21)
예수님이 지금의 우리를 위해 기도하신다. 약 2,000년 전의 사건이다. 제자들이 말씀을 잇는 것을 한 세대 정도만 멈췄더라도 교회와 말씀이 사라졌을 수도 있었을 텐데, 지금 나에게 실효적으로 다가온다는 점이 경이롭다. 이렇듯 말씀이 이어져 오기에 예수께서 나를 위해 기도하는 것이 가능해졌다. 공동체는 끊임없이 말씀을 잇는 연합이다. 그리고 간구하는 하나 됨은 존재론적 연합으로, 삼위일체의 상호 내주에 인간이 참여하는 것이다.

존재론적인 연합
인간을 비롯한 모든 존재는 서로에게 영향을 주려면 물리적 접촉이 필요한 것처럼 보이지만, 본문이 말하는 연합은 다르다. 차원이 다른 존재의 상태가 서로에게 연결되고, 전체가 하나의 생명력으로 얽혀 있는 이 상호 내주의 질서는 시공간의 제약을 넘어서는 보이지 않는 연결을 드러낸다. 물리학에서도 떨어진 상태가 서로 연결된 것처럼 보이는 현상(양자 얽힘)이 관찰되기도 한다. 다만 이것이 본문을 설명하는 근거나 증명의 시도는 아니며 범주도 다르다. 동일한 원리는 아니지만, 인간의 직관으로 이해되는 유사한 패턴이라 덧붙인다.
포도나무의 연합은 분리될 수 없는 관계 안에 생명이 유지됨을 보여준다. 포도 열매는 줄기를 통해 뿌리와 연결되어 있지만, 열매 스스로가 뿌리의 존재를 직접적으로 인식하고 있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분명히 생명의 공급망은 연결되어 있다.

기도의 목적
기도 전체는 삼위일체의 연합을 인간 공동체에 확장하는 과정이며, 이 흐름 자체가 예수님의 사역의 완성으로 보인다. 사역의 최종 목적은 미래의 모든 신자를 통해 세상이 하나님을 믿게 하는 데 있다. 왜 믿기를 바라실까? 하나님의 사랑은 예수님을 감싸시고 그 사랑을 인간에게 확장하지만, 결국 의로운 심판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믿음은 의에 대한 심판에서 자녀를 구출하게 한다. 말씀은 믿음을 가진 자에게 그 실효성이 생기기 때문이다. 자녀를 바라보는 아버지의 마음을 대입하면 알 수 있다.
“아버지여,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게 하사 세상으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믿게 하옵소서”(17:21)

기도의 문법적 특성
1) '...하기 위하여' 
인과적 구조. 이 기도는 막연한 소원이 아니라, 분명한 목적과 그에 따른 결과를 지향한다. 다시 말해, 기도의 목적이 사랑과 연합으로 이어져야 함을 뜻한다.
2)' 아버지와 내가 하나인 것 같이' 
하나님과의 존재론적 연합은 성도가 따라야 할 기준으로 제시된다.

들리는 기도의 의미
"그들을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
제자들은 예수님의 곁에서 이 기도를 듣고 있었다. 이는 앞선 14-16장에서 제자들이 전하셨던 설교를 하나님 앞에서 공식적으로 확증하시는 과정이다. 하나님께 직접 전달되는 자신들에 대한 이야기는 제자들에게 각별한 경험이 되었을 것이다.

판사의 판결처럼, 누가 어떤 자리에서 말하느냐에 따라 그 말 자체가 실재적인 효력을 갖는다. 이는 요한복음의 핵심인 로고스와 수행적 언어를 연결 짓게 한다. 우주를 구성하는 근본 질서인 로고스가 언어를 통해 실재를 규정하는 방식은 태초에 말씀으로 만물을 지으신 창조의 원리와 맞닿아 있다. 요한복음 1장의 말씀이 육신이 되었다는 선언처럼, 예수님은 곧 말씀 자체이며 여러 기적의 장면에서도 말씀과 행동이 결합된 모습을 보여주셨다.

예수님의 기도는 단순히 정보를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존재론적 연합을 새롭게 정의하는 수행적 선언이 된다. 그리고 자신에 대한 내용을 하나님께 청원하는 기도는 시간을 초월하여 말씀을 잇게 하는 동력이 된다. 약 2,000년 전의 시간적 거리가 있지만, 존재론적으로는 시공간을 뛰어넘는 연합이 가능하다.

기도의 방향
그렇다면 기도는 단순히 마음의 평안을 얻는 행위에 그치지 않는다. 이미 이루어진 일에 대한 믿음을 바탕으로 주님 안에 거하며, 그 과정에서 만나는 일상과 고난을 해석하고 말씀을 따라 행동하는 선언이다. 기도가 삶에서 힘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말씀의 주체인 하나님의 권위를 인정하고 그 선언을 나의 실재로 수용하는 믿음이 필요하다. 그리고 이 차원을 넘어서는 존재론적인 연합은 사랑으로 귀결된다.
“사랑이 그들 안에 있게 하려 함이니이다”(17:26)

기도
17장의 기도를 듣는 모든 믿음의 세대가, 주님 말씀의 권위를 인정하며, 그 판결과 같은 말씀이 반드시 수행된다는 믿음으로, 오늘도 말씀이 이끄는 거처에 머물며 구별된 삶을 살아내기를 소망한다. 또한 앞으로 믿게 될 주변의 공동체와의 연합을 위해, 성령의 도우심을 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