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의 문맥
어둠이 빛을 흡수한다는 착각. 요한복음 18:1-27 본문
제1국면: 기드론 동산
예루살렘 성벽과 감람산 사이 골짜기, 군인 무리가 마치 하나님을 직접 마주한 듯 무력하게 주저앉는다. 과거 다윗이 왕으로서 거부당했던 그곳 기드론은 인류의 죄만큼 어둡고 검다. 그 적막은 마치 빛을 삼킬 기세의 반타블랙 도료의 매트한 재질을 닮아있다.
반타블랙은 가시광선 밖의 적외선 영역마저 흡수한다. 하지만 이것을 두고 가시광선 밖의 빛, 즉 더 넓은 상위 차원의 존재까지 삼켜버린 어둠이라고 느낀다면 착각이다. 그것은 단지 반사를 하지 않을 뿐이고, 관측 기준은 인간의 시신경이 포착하는 뇌 인지 영역에 국한된다. 그 어둠이 빛을 흡수하는 것은 비유이다. 빛은 사라지지 않는다. 단지 보지 않기로 결정한 대상에게 드러나지 않을 뿐이다.
빛의 말씀을 반사하여 잇지 않기로 결정한 인간은 어둠에 머물 뿐이다. 어둠이 빛을 이긴 것이 아니다. 실제의 빛은 아무런 저항도 받지 않는다. 반타블랙과 같은 도료를 바라보면 가시광선 안팎의 빛을 색으로 인지하지 못할 뿐이다. 하지만 그 초월적인 예수의 빛은 군인들의 마비된 시신경마저 밝히며 경고한다.
"에고 에이미(내가 그니라)"
이 말씀에 담긴 참된 권위의 위엄은, 최대 600인까지 달하는 대규모 로마 보병대이며 대제사장 등이 합세한 군대를 뒷걸음질 쳐서 땅에 엎드러지게 했다. 예수님의 말씀에 담긴 언어의 수행력은 인간의 한계를 넘어서면서, 이 사건의 주도권이 예수께 있음을 증명한다. 그리고 때가 되어 떠나면 더 이상 제자들을 직접 보호하지 못하지만, "이 사람들은 가게 하라"는 말을 통해 어쩌면 마지막이 될 보호로서 수행적 언어의 실효성을 증명하신다.
베드로는 칼을 꺼내 그들의 방식으로 저항한다. 예수님도 초월적인 빛으로 대적자들의 시신경을 멀게 하실 수 있었다. 눈에 보이는 외형에 사고를 제한하지 않는다면, 역설적으로 빛의 본질인 온기를 더 잘 느낄 수도 있다. 강제적이지만, 스스로 납득하게 되는 방식일 수도 있다. 하지만 예수님은 그들 방식으로 대응하지 않으시고, 하나님의 잔 즉 십자가 대속을 실행하신다.
제2국면: 안나스의 뜰
뜰 안
종교지도자가 이끄는 군대는 예수를 결박하여 전직 대제사장 안나스에게로 끌고 간다. 공회의 정식 재판 전, 그것도 밤중에 개인의 집에서 심문을 한다. 불법적인 정황 속 가야바의 존재는 그가 예전에 했던 말, 한 사람의 희생이 유익하다는 말이 곧 수행될 것을 예고한다.
뜰 밖
베드로는 예수께서 심문을 받으러 들어가실 때, 뜰 밖에 서 있다. 여종이 베드로를 보고 예수의 제자가 아니냐고 물을 때, 베드로는 “우크 에이미(나는 아니오)”라고 말한다. 예수님의 “에고 에이미(내가 그니라)”와 대조된다. 베드로의 말은 가야바의 말처럼 비극적 수행성이 예고된다. 베드로는 그들과 함께 서서 불을 쬔다. 그 숯불은 환히 밝히기보다 검게 타 들어간다.
말은 사람을 말의 목적지에 머물게 한다. 교회 모임에서 믿음을 말할 때, 그 말이 다시 나를 믿음의 자리로 붙든다는 것을 경험적으로 알고 있다. 반대로 남에게 쉽게 하는 부정적인 말은 상대를 믿음의 자리에서 이탈시키기도 한다. 교회 안에서 상처받고 떠나는 일도, 어쩌면 말의 실효성에서 비롯된 것일지 모른다. 빛을 부정한 채 얻는 온기는 평안이라 부를 수 없다. 그것은 교회 안에 서 있으면서도, 다른 이의 믿음을 그 자리에서 밀어내는 말에도 해당한다.
베드로는 밖에 서 있다. 그들과 함께 서 있고, 그들의 불을 쬔다. 그곳에 열기는 있지만, 온기는 없다.
하지만 예수님은 베드로를 잊지 않으셨다. 그의 말이 그를 그 자리에 묶어 두었을지라도, 그를 향한 말씀은 사라지지 않는다. 진리를 부정한 말이 그를 그에 어울리는 자리에 머물게 했지만, 그를 향한 시선과 말씀은 그를 다시 불러낼 것이다.
다른 불 곁에 서 있는 사람을 주님 곁으로 다시 부르는 것은 주님의 말씀이다.
그래서 남은 사람은 말씀으로 기도할 수밖에 없다.
오히려 주님이 보이신 말씀의 수행력을 기대하며 기도할 수 있다.
그 말씀의 목적지에서 다시 만날 그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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