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의 문맥
진리와 권력의 논쟁. 요한복음 18:28-40 본문
제3국면: 빌라도의 관정
유대 무리는 이미 예수를 죽이기로 정해 놓았지만, 스스로 처형할 권한은 없었기에 빌라도에게 넘긴다.
중요한 논쟁 장면이라서 예수님의 수사법을 나름 정리해 보았다.
1. 질문의 재정의
빌라도가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라고 묻는다. 예수께서는 먼저 빌라도 개인적인 궁금증인지 공적인 수행인지 묻는다. 빌라도는 정치적 반역 여부만 따질 뿐 왕권에 대한 개인적인 관심이 없다. 예수께서는 빌라도에게 나라에 대한 기원을 화두로 던지신다. 복음의 씨앗을 남기는 전형적인 방식이다. 왕권의 의미가 넓혀지자 빌라도는 당황했을 것이다.
2. 다른 차원을 보는 이질감
그간 예수님의 주요 대화 장면을 보면, 상대와 서로 다른 얘기를 하는 것처럼 느껴진다는 특징이 있다. 듣는 자의 전제를 넘어서는 차원에서 오는 이질감이다. 만약 현재의 안위나 권력과의 관계 회복이 목적이었다면 상대가 보는 차원 안에서 적합한 대처를 했을 것이다.
3. 제자의 수사와 다른 점
바울의 수사와는 다르다. 내가 본 바울은 상대의 세계관을 인정하고 그 안에서 상대방이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하나님 나라를 전달했다. 그는 논증과 변증 둘 다 능하지만, 그 목적은 자신이 이기려 하지 않고 오직 복음의 씨앗만 남기는 데 있었다. 말씀만 남겨지면 조용히 그 자리를 피하는 것으로 보였다. 이는 아테네에서뿐 아니라 말년의 셋집에서도 오는 방문객들을 받아들이는 입장의 차이만 있을 뿐 그 수사는 유지되었다.
예수께서는 많은 제자의 본이 되면서도, 그저 따라 할 수 있는 본이 아닌 그 본의 '기원'이어야 했다. 여기서 차이가 난다. 그래서 차원이 다른 대화 양상에 따르는 근시안적인 고난을 아시면서도 시공간을 초월하여 통찰을 주는 대화를 선택하신다.
4. 강력한 실효성의 수행적 언어
다시 빌라도와의 대화로 돌아와서,
"네가 왕이 아니냐?"는 질문에 예수께서 (수행적 언어에 기반을 둔)말씀을 하신다.
"당신이 그렇게 말한다."
"내가 이를 위하여 태어났으며 이를 위하여 세상에 왔나니 무릇 진리에 속한 자는 내 음성을 듣느니라."
이것은 빌라도를 위한 의미심장한 말씀이면서 진리에 대하여 증언하는 것이다.
"진리가 무엇이냐?"
빌라도는 이 마지막 한마디를 남기고 대화는 이어지지 않았지만, 스스로 한 그 질문이 빌라도의 마음을 두드릴 것이다.
5. 십자가로 확증하는 육신이 된 말씀의 수사
이후 빌라도는 예수를 향해 왕을 인정하는 듯한 조소 섞인 말을 하지만, 의도와 달리 말이 씨가 된 여러 장면처럼 이 또한 역설적으로 십자가를 통한 세상의 구원자로 이끄는 선택이 된다. 빌라도는 유월절 관습대로 예수를 석방하려 했지만 '유대의 왕'이라는 단어를 사용함으로써 유대 지도자들의 분노에 불을 지폈다.
결국 바라바라는 범죄자가 예수님을 대신해 풀려난다.
바라바는 예수님과 교차(Cross) 된다. 바라바는 영문도 모른 채, 의도된 십자가 대속의 은혜를 입었다.
흠 없는 존재가 자격 없는 죄인을 위해 대신하여 죄를 씻겨주셨다. 예수께서는 제자의 발을 씻기시며 이것은 빚진 것을 갚는 것처럼 이웃에게 행하라고 말씀하셨다.
십자가는 주님이 나와 자리를 바꾸신 사건이다. 빚진 은혜가 서로 교차하며 수많은 바라바가 주님 안에 연합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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