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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께서는 땅에 무언가를 쓰셨다. 요한복음 8:1-20 본문

묵상_에세이 [성경의 서사]/요한복음

예수께서는 땅에 무언가를 쓰셨다. 요한복음 8:1-20

집사 K 2026. 2. 25. 06:00

인간들은 신의 섭리인 심판을 자행하려 하고, 신은 오히려 용서를 한다.
인간의 시신경은 타인의 죄를 선별적으로 받아들이며, 뇌는 단죄를 통해 스스로 심판자가 되기를 갈망한다.
심판자의 특징은 심판을 수행하는 자신은 죄가 없다는, 혹은 심판이라는 행위 자체가 죄와 양립할 수 없다는 착각에 빠지는 것이다. 신은 용서라는 가장 큰 사랑을 통해, 신이 되고자 했던 인간에게 인간성의 회복을 권한다. 예수님의 몇 마디 말씀과 제스처는 그들을 심판자의 자리에서 내려오게 만든다. 그 자리는 본래 신의 자리도 아니었을, 괴물의 위치였겠지만.
상위 차원의 심판과 하위 차원의 용서라는 역할이 뒤바뀐 채 스스로 심판자가 되려는 인간을 신의 사랑이 보호하시는 사건이다. 그 몇 마디와 제스처는 개인적으로 요한복음 내에서도 숨 죽이게 만드는 놀라운 임팩트이다.


'죄지은 여자를 돌로 쳐 죽이라'는 율법을 들이대는 추궁에 대해,

예수께서는 몸을 굽혀 손가락으로 땅에 무엇인가를 쓰셨다.

그리고 "너희 가운데서 죄 없는 사람이 먼저 이 여자에게 돌을 던져라"라고 말씀하신 뒤 다시 땅에 무엇인가를 쓰셨다.

곧 사람들은 떠났다.


예수님은 무엇을 쓰셨을까?

맥락을 살펴보면 아마도 그들에게 보내는 강력한 양심의 촉진제 혹은 그들을 달아나게 할 만한 강력한 반대 심문의 메시지였을 것이다. 그렇다면 설득력 있는 것은 후자, 즉 그들의 죄목일 가능성이 높다.
"너희 가운데서 죄 없는 사람이 먼저 이 여자에게 돌을 던져라"

이 말씀과 함께, 그들의 죄목을 크게 드러내지 않고 각자가 눈치챌 만한 단서들을 땅에 조용히 적으셨다면 그들은 자리를 피할 수밖에 없다. 호전적인 그들이 단지 양심 하나로 물러설 리 없기 때문이다. 실제로 너희 모두 죄가 없지 않다는 것을 증명하셨고, 성경에서도 그 내용을 일일이 드러내지 않음으로써 그 여자처럼 그들에게도 돌이킬 기회를 주셨다. 덕분에 그들 모두와 여자 모두가 돌아갈 수 있었다.
결론은 "너희 모두 죄인인데, 그 돌을 너희는 피할 수 있겠어?"라는, 하위 차원의 모든 개체의 패를 훤히 알고 있는 존재만이 할 수 있는 일이었다. 이 해석에는 예수께서 무슨 글을 쓰셨는지 알려주지 않는 부분이 가장 큰 단서가 된다.

그렇게 예수님은 모든 죄를 다 아시면서도 아무도 정죄하지 않으신다.

그리고 말씀하신다.
"나는 세상의 빛이다. 나를 따르는 사람은 어둠 속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을 것이다."


정죄하는 것은 어둠 속을 다니는 것과 같다. 서로의 빛을 끄는 행위와 같기 때문이다.
이후 12절부터 20절까지 바리새파 사람들과의 논쟁에서 예수님이 하시는 말씀의 핵심은 서로의 인지 범위가 다르다는 것이다. 차원의 개념을 알아야 비로소 헛바퀴 돌던 톱니바퀴들이 서로 맞물려 돌아가기 시작한다.


나 역시 누군가를 정죄하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본다. 스스로를 객관화하려 노력해도 결국 내 중심적인 주관에 머물 수밖에 없음을 인정한다. 때로는 내 손에 돌이 쥐어져 있다고 느껴질 만큼 분노가 치밀기도 한다. 만약 예수님이 땅에 쓰시는 그 키워드가 나의 돌을 내려놓게 만든다면, 그 순간은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는 정적이 흐를 것 같다. 특정 영역에서 내가 당당하다 할지라도 삶의 모든 면에서 그러할 수 있을까. 내게는 타인의 빛을 끌 자격이 없다. 그것이 단 한 마디의 정죄일지라도 말이다. 땅을 파헤치며 내 죄를 경고하는 예수님의 손가락은 오히려 내가 살아 돌아갈 활로를 열어준다.
정죄하지 않으시면서 죄를 깨닫게 하고 살의를 잠재우는 그 따뜻하고 강력한 수기는, 나를 더 좋은 사람으로 살고 싶게 만드는 예수님의 초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