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의 문맥
30화 [교회 3부] 무례 본문
교회의 정체성은 한 아버지를 둔 형제 즉 가족 공동체라고 할 수 있다.
교회는 세상에서 외면받는 이들을 조건 없이 품는 최후의 보루다. 질병, 장애, 경제적 결핍 등 세상의 잣대로는 결격 사유가 될 것들이 교회 안에서는 사랑과 긍휼의 대상이 된다. 이것은 기독교 공동체가 가진 바람직한 가치다. 하지만 이 수용성은 역설적으로 사회적 규범과 예의를 학습하지 못한 이들에게 방종의 공간을 제공한다.
사회에서는 도태될 무례함이 신앙이나 가족이라는 허울 아래 용인되기 때문이다.
가족 같은 회사, 일자리라는 약점을 인질삼아 상사의 선넘은 행위가 사내 문화가 된 회사를 풍자하는 말이다.
일반적인 사회 모임은 무례한 사람을 피해 떠나면 그만이지만, 교회는 신앙과 삶이 결착된 곳이라 떠나는 행위 자체가 영적 터전을 잃는 리스크가 된다.
무례한 자들은 무의식적으로 나쁜 가족도 가족임을 드러낸다. 성숙한 자들이 미성숙을 감내하며 공동체를 지탱하는 기형적 구조가 교회를 지탱한다. 성경은 이런 규모 없는 자들에 대해 단호하다.
바울은 데살로니가후서 3장 6절에서 규모 없이 행하고 전통대로 행하지 아니하는 모든 형제에게서 떠나라 명했다. 무조건적 인내가 아니라 격리가 성경적 처방이다.
나도 경험해 봤기에 오랫동안 생각해온 주제인데, 이러한 무례함은 두 가지 비겁한 동력에서 기인한다.
첫째는 상대적 결핍이다. 타인의 건강한 유대와 성취는 그들의 결핍을 대면하게 만드는 통로가 된다.
둘째는 온정주의를 이용한 권위주의다. 교회의 따뜻한 분위기를 방패 삼아 만만한 상대에게 무례를 뱉으며 자신의 우월함을 확인하려 든다. 이는 짐을 지우되 자신은 손가락 하나 까딱 않는 바리새적 권위의식이 떠오르게 한다.
이들을 대할 때는 잠언의 지혜가 필요하다.
미련한 자의 논리에 휘말려 품위를 잃지 말되, 때로는 단호하게 선을 그어 그들의 무례함이 권위가 아님을 일깨워야 한다. 논리적 답변이 해결이 안 되는 이유는 상대의 허점이 많을수록 그것을 비추는 논리가 상대를 더 괴롭게 만들기 때문이다.
결국 성경적 사랑은 무질서한 수용이 아니다.
마태복음은 거룩한 것을 개에게 주지 말며 진주를 돼지 앞에 던지지 말라 경고한다. 정성껏 일궈온 삶의 가치는 진주와 같다. 이를 짓밟는 자들에게 진주를 내보일 의무는 없다.
나는 상대적 차별을 두어 영성을 보호하기로 한다. 이는 미워함이 아니라 상대가 무례라는 죄를 짓지 않게 돕는 단호한 사랑이다. 무례의 기질을 보이는 이들에게는 명확히 거리를 두되 오직 예수께만 마음을 여는 분별력이 교회 안의 평안을 지키는 길이라는 생각이 조금은 씁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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