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의 문맥
시편 12편–15편 본문
이제 시인의 관점은 개인적인 응답을 넘어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를 향해 나아간다.
여기서도 각 편이 완전한 인과관계로 이어진다고 단정할 수는 없지만, 배열의 의도를 따라 나타나는 흐름을 하나의 맥락으로 이해하며 연결하여 읽어 보았다.
12편은 인간의 헛되고 공허한 언어를 단련된 하나님의 말씀과 대비한다. 인간의 언어는 피조물의 유한함을 드러내고, 그 대비를 통해 하나님의 말씀은 더욱 완전하고 신뢰할 만한 것으로 나타난다.
13편에서 시인은 그 말씀을 의지하면서도 응답이 보이지 않는 상황 속에서 “어느 때까지니이까”라고 반복하여 묻는다. 그러나 상황이 나아졌다는 언급이 없음에도 다시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의지하며 찬양한다. 이 지점에서 신뢰의 근거가 상황의 변화에서 하나님의 성품으로 옮겨가는 것을 발견한다.
상황이 나아지지 않았음에도 시인의 관점이 바뀌는 것을 보며, 피조물의 상황이 나아지는 것이 창조주의 완전함을 증명하는 조건일 수는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과 고난은 반드시 서로 반대되는 개념은 아니다. 고난은 때때로 인간이 자신의 한계를 마주하고 하나님을 바라보게 되는 계기가 된다. 물론 모든 고난의 이유와 목적을 인간이 단정할 수는 없다.
사람은 흔히 자신의 상황이 달라졌는지, 기도가 응답되었는지를 통해 하나님의 일하심을 판단하려 한다. 그러나 하나님을 있는 그대로 인식하기 위해서는 그분과의 관계를 자기 유익과 기도 응답 여부로만 해석하려는 시선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렇듯 인간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더라도 그것이 하나님의 완전함을 훼손하지는 않는다. 하나님의 신실하심은 인간의 갈등 해소나 성취로 증명되지 않으며, 제한된 인간의 인식으로 하나님의 섭리를 모두 설명할 수도 없다. 피조물의 상태가 창조주의 완전함에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는 자각은, 시인의 모습에서 보듯 오히려 신앙에 안정감을 준다.
14편에는 “하나님이 없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등장한다. 이것은 단지 철학적 무신론만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계시지 않는 것처럼 생각하고 살아가는 태도까지 포함한다고 볼 수 있다.
이 말씀은 현대의 신앙과도 연결되는 지점이 있다. 가시적인 기도 응답은 신뢰의 계기가 될 수 있다. 그러나 한 사건의 유리한 결과를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증명하는 유일한 근거로 삼는다면, 그 일이 다시 어려워질 때 동일한 기준은 오히려 하나님의 부재를 말하는 근거로 뒤집힐 수 있다.
문제는, 상황의 결과만으로 하나님을 판단하는 해석 방식이다.
신앙의 영역에는 갈등과 인내처럼 인간이 피하고 싶은 요소도 포함된다. 인간은 대개 불확실성을 싫어하기에 기도의 방향도 자연스럽게 성취와 해결을 향한다. 그러나 신앙의 중요한 기준은 하나님을 나의 목적을 위한 수단이 아니라, 그 자체로 예배받으실 분으로 받아들이는 데 있다.
13편 5절에서 시인이 의지하는 것은 하나님의 언약적 사랑인 ‘헤세드’다. 하나님이 미신적인 도구가 아니듯, 말씀 또한 원하는 결과를 얻기 위한 수단이 아니다. 눈에 보이는 성취나 즉각적인 문제 해결이 따르지 않더라도, 완전하신 하나님 안에 거하는 삶을 바라본다면 기도의 방향과 감사의 대상도 달라질 수 있다.
이제 관점은 “하나님이 나를 위해 무엇을 하셔야 하는가”에서 “나는 그 하나님 앞에서 어떤 예배자로 살아갈 것인가”로 이동한다.
15편은 '정직하게 행하며 공의를 실천하고 그의 마음에 진실을 말하는 자'가 하나님의 장막에 머문다고 전한다. ‘정직함’으로 번역된 ‘타밈’은 온전함과 완전함의 의미로도 쓰이지만, 주어와 문맥에 따라 의미의 결이 달라지는 것 같다. ‘정직함’은 인간에게 적용하기에 적절한 번역이다. 덧붙여 이를 온전함과 완전함의 의미로 확장해 보면 앞선 해석과 연결되는 지점이 있어 조금 더 구분해 정리하면 좋을 것 같다.
온전함과 완전함에 대해
하나님의 완전함은 결핍이 없는 절대적인 속성이지만, 피조물의 온전함은 무결점 상태라기보다 그분과의 관계 안에서 마음과 삶이 나뉘지 않고 통합되어 가는 성숙에 가깝다. 정직함은 그러한 온전함이 인간의 삶에서 구체적으로 드러나는 방식이라고 생각한다.
조건부 믿음을 넘어 유한한 나를 정직하게 마주하고, 절대자이신 하나님을 바라보며, 참된 예배자로서 온전하게 빚어져 갈 수 있기를 기도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