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의 문맥
시편 5편 본문
"나의 왕,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부르짖는 소리를 들으소서 내가 주께 기도하나이다." (시편 5:2)
다윗이 스스로 고백하는 '부르짖는 소리'라는 표현에는 그의 큰 괴로움이 담겨 있다.
"여호와여 아침에 주께서 나의 소리를 들으시리니 아침에 내가 주께 기도하고 바라리이다." (시편 5:3)
원어의 맥락을 살펴보면 '아침(보케르)'은 재판 용어는 아니지만, 맥락상 재판이 열리는 첫 시간을 떠올리게 하며, '기도하다(아라크)'는 증거 제출과 연관된 법정 용어로 사용되었다. 즉, 다윗의 기도는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한 진술의 성격을 띤다. 그리고 '바라다(차파)'는 파수꾼이 기다린다는 의미로, 파수꾼의 심정으로 소식을 기다리는 간절함을 담고 있다.
"오직 나는 주의 풍성한 사랑을 힘입어 주의 집에 들어가 주를 경외함으로 성전을 향하여 예배하리이다." (시편 5:7)
여기서 '풍성한 사랑(헤세드)'은 언약에 기초한 하나님의 변함없는 사랑이다. 그 사랑이야말로 다윗이 재판과도 같은 이 힘든 과정에서 승리를 확신하는 가장 큰 근거가 된다.
"그들의 입에 신실함이 없고 그들의 심중이 심히 악하며 그들의 목구멍은 열린 무덤 같고 그들의 혀로는 아첨하나이다." (시편 5:9)
다윗의 상대는 거짓된 말로 사람에게 해를 끼친다.
정리하면, 다윗은 자신을 모함하고 거짓말을 하는 사람들 앞에 맞설 힘이 없어 보인다. 스스로 무력하다고 느끼기에, 하나님의 큰 힘을 붙잡고 그분의 크신 사랑에 근거하여 하나님의 판결을 기다린다. 사실 상대 진영은 이 재판의 과정을 의식조차 하지 못하고 있을 것이다. 심판자가 인간이라면 아무 의미 없는 과정이겠지만, 심판관이 모든 것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이시라면, 즉 모든 것을 초월한 진리와 섭리 그 자체라면 의미가 다르다.
이는 악인이 천벌을 받는다는 식의 단순한 인과율적 접근과는 다르다. 적극적인 청원과 심판관의 약속을 근거로 한다는 점에서, 단순한 자연의 섭리나 무속적 저주를 넘어선 인격적 설득 과정이다.
그렇다면 다윗의 이런 행위가 실제 상대에게 어떤 심판적 작용을 미칠까?
인과율의 관점이라면 인간의 기준에서 벌을 받고 배상을 해야겠지만, 현실은 꼭 그렇지만은 않다.
여기서 형통한 삶에 대해 정의가 필요하다. 나는 형통한 삶을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 그 자체라고 전제해 본다.
원하는 대로 타인을 모함하고 거짓말하며 상처를 준다고 해서, 현실에서 '눈에는 눈, 이에는 이'처럼 똑같이 복수당하지는 않을 수 있다. 그것이 하나님의 방식이라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단지, 그런 자리에 하나님의 성품이 머무르지 않을 뿐이다. 그 자리는 결코 형통한 자리가 아니다. 생명 없는 삶, 사망을 향하는 삶, 즉 죄 안에 머무르는 것 자체가 하나님을 만날 수 없는 공간이자 가장 본질적인 심판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시편 5편에서는 '하나님이 악인을 기뻐하지 않으시며, 그들이 하나님 앞에 설 수 없다' 정도까지만 확정하는 것이 조심스러운 접근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의인은 이 사실만으로도 충분한 위로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여기서 올해 초 묵상했던 요한복음 8장의 죄에 대한 이해를 다시 떠올리게 된다.
"내가 가노니 너희가 나를 찾다가 너희 죄 가운데서 죽겠고 내가 가는 곳에는 너희가 오지 못하리라" (요한복음 8:21)
'죄 가운데'
만약 '죄 때문에'라고 되어 있었다면 행위의 인과적 결과처럼 느껴졌을 것이다. 하지만 '죄 가운데'라는 표현은 장소와 상태를 암시한다. 나는 성경에서 말하는 죄를 도덕적 실수라기보다 하나님이 없는 공간, 즉 하나님과의 연결이 끊어진 상태 그 자체로 이해하고 있다.
하나님이 필요 없는 삶은 어쩌면 불편함 없이 편안하고 미래가 잘 보장된 삶처럼 보일 수 있다. 신앙 생활이나 말씀 묵상 또한 눈에 보이는 결과가 목적이라면, 종교적 수행처럼 수단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신앙은 필요에 의한 수단이 아니라, 그 자체가 목적이 되어야 한다고 말하고 싶다.
말씀을 묵상하며 현실의 어려움을 하나님께 아뢰고, 말씀과 동행하는 과정 자체가 이미 형통한 삶이다.
하루를 만나에 의지해 살아가는 것처럼, 사회적 능력의 유무와 상관없이 말씀에 기대어 잠들고 깨어나면 족하다. 현실의 어려움을 하나님께 맡기고 상대를 향한 단순한 복수에 관심을 두기보다, 일상을 하나님께 의지하며 살아가는 삶이 진정한 형통이다.
필요가 아닌 목적 그 자체로서 말씀을 묵상하며, 하나님의 약속에 근거한 경고를 가볍게 여기지 않고 청원하는 다윗의 힘겨운 부르짖음에 깊이 공감해 본다.
현실에서는 인간적으로 속 시원한 복수가 없을 수 있다. 하지만 다윗은 그 어려움 가운데 쉼을 얻는다. 쉼은 시원하게 한다는 의미가 있다. 죄 가운데 머물기로 결정한 상대의 논리는, 결코 하나님의 말씀을 설득할 수 없다.
*하나님의 말씀을 근거로 붙잡는 다윗에게 공감하며, 시편 5편과 관련해 말씀의 근거를 정리해 둔 묵상 기록들을 아래에 덧붙입니다.
[죄에 대해: 요한복음 8장 21절]
https://bp7log.tistory.com/119
[형통, 목적으로서의 묵상: 창세기 39장]
https://bp7log.tistory.com/162
[쉼, 시원하게 하는 아나파우오: 고린도전서 16장]
https://bp7log.tistory.com/18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