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의 문맥
은사의 바다. 고린도전서 16장 본문
지금의 튀르키예 서해안, 과거 에게해의 수평선을 등진 항구 도시 에베소에는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가 운영하는 가죽 공방이 있었다. 그 공방 2층에서 내려온 한 남자가 널린 천막 사이로 가죽 먼지를 일으키며 파피루스 두루마리를 주의 깊게 들고 나온다. 그 두루마리는 곧 심부름꾼 스데바나를 통해 일행의 짐과 함께 배에 실린다.
흔들리는 배의 밑창, 파도에 젖기 쉬운 이 무기력한 파피루스에 고린도전서가 담겨 있다.
과거 진리가 담겨 있던 모세의 돌판은 가벼웠지만, 우상숭배를 보고 진리가 떠난 돌판은 무거운 돌덩이가 되어 떨어져 깨어졌다. 바울은 그 편지의 진리가 부디 고린도 교회에 도달할 때까지 깨지지 않고 공동체에 온전히 전달되기를 기도했을 것이다.
편지를 보내고 교회에 전달되기를 바랄 뿐인 바울의 마음은, 마치 공동체에 말씀을 띄워 보낸 하나님의 마음과도 비슷해 보인다.
이 무기력해 보이는 편지라는 매체를 바라보는 바울의 시선에는 담대함과 함께 불안의 간절함도 느껴졌다. 그렇다고 해서 전달되는 말씀 자체에 무기력함을 느낀 것은 아닐 것이다.
하나님은 말씀을 스스로 열어보길 바라는 인간을 기다리신다. 하지만 당신의 말씀이 신자에게 잘 도착하기만을 바라는 마음으로 막연한 불안 요소를 안고 가시는 것은 아니다. 찢어지기 쉬운 편지를 띄워 보낸 바울의 심정을 상상하면서 이어진 고린도전서의 결론을 정리해 본다.
엄밀히 말해 배를 목적지로 밀어주는 궁극적인 동력은 적절한 날씨와 보이지 않는 바람, 곧 하나님의 허락하심일 것이다. 하지만 걱정과 불안 요소로 보였던 바다의 파도는 본질적으로 그 배가 나아갈 수 있도록 떠받치는 거대한 길이기도 하다. 성령으로 비유되는 바람이 등 떠밀어 주시지만, 거친 바다 위에서 온몸으로 부딪히고 받쳐내며 스스로 길이 되어주는 것은 성도들의 몫이다. 말씀은 그렇게 공동체라는 길 위로 이동한다. 성도가 모인 공동체는 연합하여 그 말씀을 실어 나르고 수신자에게 전달하는 역할을 한다.
큰 파도는 고난과 같다. 공동체 특성상 사람과의 관계의 부딪힘이 그렇다. 하지만 공동체는 그 관계의 부딪힘 속에서도 결국 배를 옮기는 성령의 인도를 경험한다. 그러므로 일방향의 편지를 띄워 보내는 마음은 단지 간절하고 불안한 기다림이 아니다. 보이지 않는 이끄심 속에서 갈등과 마찰을 겪으면서도 기어이 말씀을 온몸으로 운반해 내는 거대한 흐름에 대한 깊은 신뢰가 있다.
편지의 마지막 16장을 이렇게 기억한다.
바울은 부활이라는 초월적인 진리를 말한 직후, 일상의 온기를 전할 수 있는 나눔과 섬김 그리고 쉼을 전한다.
쉼의 원어 '아나파우오'에는 '시원하게 하다'라는 의미도 담겨 있다. 몸과 마음의 시원함은 생기, 곧 생명을 연상하게 한다. 무거운 짐 진 자들을 쉬게 하신 예수님 말씀의 쉼이다. 그 말씀은 내게도 큰 위로가 되었다.
따뜻함에서 오는 쉼과 교제는 은혜이면서, 그 자체로 은사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서로에게 쉼을 주고 잠시나마 미소 짓게 할 수 있는 것이 '은사'이다.
서로 손님처럼 환대하면서도 서로에게 기꺼이 의지하는 마음을 가진 이타적인 관계가 교회 공동체이다. 예수님의 편지에 담긴 '말씀을 환대하는 것'이 좋은 교회의 모습이다. 종말과 부활의 신앙은 결국 하루를 사는 묵묵한 일상에 담겨 있다.
그리고 편지의 마지막에 안부를 전한다.
"마라나 타! 우리 주여, 오시옵소서."
"주 예수의 은혜가 여러분과 함께하기를 빕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나의 사랑을 여러분 모두에게 보냅니다. 아멘."
[파무자크 해변에서 쓰는 답장]
바울은 편지를 보낸 후 에베소의 언덕을 따라 내려가 해안가에서, 에게해 너머 멀리 아테네에 가려진 고린도를 향해 한참을 서 있었을 것 같다. 그의 시선은 고린도를 향하지만 눈부시게 부서지는 파도가 그를 맞이한다. 그 풍경에 머물러보고자 한다.
바다의 한복판은 거친 파동의 연속이다. 색이 섞이는 물감의 마찰 또한 갈등이다. 그렇게 속속들이 나를 아는 편지처럼 전달된 말씀은 나의 현실과 거칠게 마찰을 빚을 때가 많다. 하지만 그 마찰은 무의미한 충돌이 아니라 결국 더 깊은 색을 이끌어내는 조색 과정이다.
바다의 거친 파도가 고난이면서도 배를 온몸으로 받쳐내는 길이 되듯, 다양한 관계 속에서 발견되는 수만 가지의 은사 하나하나가 높고 낮음 없이 그 자체로 말씀을 운반하는 위대한 흐름임을 알게 한다. 가까이서 보면 고단한 마찰이지만, 멀리서 바다 전체를 바라볼 때 그 수많은 부딪힘은 내리쬐는 '위대한 빛'을 반사하며 수면 위를 수놓는 반짝이는 윤슬로 아름답게 빛나게 된다.
깊은 수심의 남색과 코발트블루로 이어지는 지중해의 수평선은 마치 스펙트럼의 끝처럼 진한 보라색 라인을 띤다. 그 바다 너머 고린도는 아마 육안으로 보이지 않을 거리였겠지만, 보이지 않는다고 없는 것도 아니고 단절된 것도 아니다.
수평선의 끝이 상상으로 빚은 마젠타처럼 보이듯,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님을 인지한다. 바울은 육안으로 보이지 않지만 파도를 타고 곧 닿을 것을 믿고, 고린도 교인들을 신뢰하며 바라보고 있다. 그리고 답장을 기다린다.
편지처럼 일방향으로 연결된 말씀을 열어볼 때, 말씀을 보내신 그분의 나를 향한 기대와 위로와 신뢰가 닿는 것을 느낀다. 말씀은 시원한 바람처럼 쉼 '아나파우오'를 준다. 편지를 보내는 마음과 그 신뢰에 공감하면 비로소 답장을 쓰게 된다.
그 옛날 바울이 바라보았을 그 바다, 지금의 파무자크 해변에서 답장에 첨부할 그림을 그리며 지중해 해안의 색에 머무는 쉼의 시간을 가져본다.


[추신]
해변 조색 가이드
1. 쉼의 하늘
화이트 80% + 피콕 블루 20% + 카민 레드 소량
맑고 시원한 푸른색에 카민 레드를 약간 추가. 아래로 내려올수록 밝게.
2. 갈등과 물결의 바다
위쪽 수평선 라인: 프루시안 블루 70% + 화이트 20% + 카민 레드 10%
대부분의 면적: 피콕 블루 60% + 화이트 30% + 레몬 옐로우 10%
아래로 내려올수록 피콕 블루에 레몬 옐로우를 섞어 맑고 시원한 청록빛 물결 표현.
3. 발을 딛고 서 있는 일상의 흰 모래사장
화이트 85% + 레몬 옐로우 10% + 프루시안 블루 5%
햇살과 비슷한 모래색에, 프루시안 블루를 미세하게 섞어 톤 다운.
4. 빛나는 은사, 수면의 윤슬
화이트 95% + 레몬 옐로우 5%
물기를 거의 뺀 붓에 아주 밝은 색을 묻혀 점을 찍듯 빛을 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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