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의 문맥

결혼에 대해. 고린도전서 7장 본문

묵상_에세이 [성경의 서사]/고린도전서

결혼에 대해. 고린도전서 7장

집사 K 2026. 6. 12. 23:59

"믿지 아니하는 자가 갈라지거든 갈라지게 하라 형제나 자매나 이런 일에 구속될 것이 없느니라 그러나 하나님은 평화 중에 너희를 부르셨느니라" (고린도전서 7:15)

바울은 결혼, 독신, 이혼 등에 대해 다루며, 결혼이 그리스도인에게 필수는 아니라는 전제로 말한다. 다소 급진적으로 보일 수 있는 바울의 말은, 당시 금욕주의적 경향을 가진 사람들과의 대화 맥락 속에서 이해가 된다.

당시 고린도는 음란함이 공공연하게 용인되던 문화였다. 
교회 안에서는 앞선 장에서 언급한 이원론적 사고로 인해 육체를 음란에 방임하는 경향이 있었지만, 반대로 이원론을 근거로 금욕주의로 흐르는 움직임도 있었다고 전해진다.

바울은 상대가 이해할 수 있는 지점에서 대화를 시작하는 화법을 자주 사용했다.
그래서 그는 독신주의자를 고려해 결혼 자체를 절대화하지 않는다는 말로 대화를 시작하지만, 결국 각 사람이 처한 상황 속에서 하나님께 받은 부르심에 따라 살아갈 것을 권면한다.

상대를 인정하는 말로 시작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금욕주의가 거룩의 전제 조건은 아니다. 오히려 음란함이 만연한 사회에서는 배우자가 없는 것이 더 큰 유혹에 노출될 수 있다. 그래서 바울은 결혼 안에서 서로에게 책임을 다하며, 음란한 문화 속에서 자신을 지키는 길을 제시한다.

그런데 결혼이 필수가 아니라는 바울의 견해는 창세기의 가르침과 충돌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나님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사람이 혼자 사는 것이 좋지 아니하니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창 2:18)

하지만 두 본문은 맥락이 다르다.

창세기의 맥락은 창조 질서 안에서의 인간 존재 자체에 대한 이야기이다. 인간은 본래 관계적 존재로 창조되었으며, 서로의 부족함을 채우고 연합하도록 부름받았다.

반면 고린도전서는 타락한 세상 속 인간관계의 현실을 다룬다.

결혼은 서로를 세워 주는 축복이 될 수 있지만, 죄성을 가진 인간이 만나는 자리인 만큼 깊은 갈등의 공간이 되기도 한다.

그래서 바울은 결혼 자체보다 하나님과의 관계 안에 머무는 삶을 더 중요하게 말한다. 믿지 않는 배우자가 갈라지기를 원한다면 억지로 붙잡지 말라고 말한다. 신항에 더 어려움을 겪게 하는 상황에 따라서는 이혼을 지지하기도 하지만, 이것 역시 결혼 자체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핵심은 하나님이 우리를 평화 가운데 부르셨다는 점이다.

결국 바울이 강조하는 것은 결혼 여부 자체보다, 하나님과의 관계 안에 머무는 삶이 훨씬 중요하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창세기와 고린도전서의 결혼에 대한 가르침은 서로 충돌하지 않는다. 오히려 창세기 말씀과 함께 볼 때 서로 보완해주는 것 같다.

창세기는 서로의 부족함을 채우는 연합의 가치를 말한다.

고린도전서는 하나님과의 관계가 모든 관계보다 우선되어야 함을 말한다. 나는 이것을 조금 더 구체적으로, 자신의 안에 있는 하나님의 형상이 회복되는 참된 평안을 먼저 누리는 것이라고 이해한다.

그렇다면 자신이 먼저 하나님 안에 거하는 삶, 곧 샬롬의 상태를 살아가며 서로를 샬롬으로 이끄는 관계로 살아갈 때 평안을 누릴 수 있다.

이 두 가지가 함께 이루어질 때 결혼은 큰 축복이 될 수 있다. 먼저 서로가 하나님 안에 거할 수 있도록 존중하고, 서로를 세워주며 평화를 누리는 건강한 관계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본문에서는 성적 문제를 중심으로 결혼을 다루지만, 결국 그 이면에서 하나님 안에 머무는 참된 평안을 되짚어 보게 된다.

어떤 관계 안에서 살아가더라도, 하나님과의 관계 안에 머물며 평화를 누리는 삶이 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