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의 문맥
자신을 드러내려고 선을 이용하는 사람과, 선을 드러내려고 자신을 감추는 사람. 고린도전서 2장 본문
바울은 자신의 전도 방식에 대해, "탁월한 말이나 지혜"로 복음을 전하지 않았고, 오히려 "약하고 두려움과 심한 떨림" 가운데 있었다고 말한다.
바울은 화려한 언변과 논리적 설득력을 감추었다. 이는 단순한 겸손의 표현이 아니라 전략적인 선택이었다고 생각한다. 바울의 서신서를 보면 그가 얼마나 뛰어난 신학적 지식을 가지고 있었는지 알 수 있다. 신학뿐 아니라 헬라 문화에 대한 이해까지 고려하면, 당대 최고의 지성인 가운데 한 사람이라 해도 부족함이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바울은 '설교자의 말재주나 지식에 더 집중하는 청중의 심리'를 보았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강함을 의도적으로 드러내지 않고, 약함을 통해 하나님의 능력이 더욱 선명하게 나타나기를 원했다. 바울이 중요하게 여긴 것은 사람들이 자신에게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집중하는 것이었다.
내가 기억하는 바울은 사람들에게 다가갈 때 자신의 높음이나 권위를 앞세우지 않았다. 그는 공동체의 수준과 문화, 정서를 먼저 이해하려 했고 그것에 자신을 맞추었다. 사람들을 굴복시키기보다 말씀만 남기고 자신은 뒤로 물러나는 길을 택했다.
사도행전에서 아테네 사람들에게 "알지 못하는 신에게"라고 새긴 제단을 언급하며 그들의 종교적 열심을 인정했던 것처럼, 바울은 언제나 듣는 사람들과의 공감대를 먼저 찾았다. 자신의 강점을 과시하기보다 상대가 복음을 받아들일 수 있는 접점을 찾으려 했다.
고린도 교인들이 열광했던 아볼로는 "언변이 좋고 성경에 능통한" 사람이었다. 그의 설교는 논리적이고 설득력 있었으며, 듣는 이들에게 지적인 만족감까지 주었을 가능성이 크다.
아볼로는 분명 훌륭한 사역자였다. 그러나 고린도 교인들은 그의 탁월함을 중심으로 파벌을 형성하기 시작했다. 문제는 아볼로가 아니라, 사람을 중심으로 신앙을 이해하려 했던 고린도 교인들의 태도에 있었다.
바울은 이 점을 간파했다.
그래서 그는 반대로 "미련하고 약한" 방식을 선택했다. 이는 듣는 자들이 말하는 사람의 겉모습, 곧 지식과 학벌, 배경과 표현력, 카리스마에 현혹되지 않고 그 안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에 집중하게 하기 위함이었다.
이 본문은 무엇보다 고린도 교인들을 향한 메시지이다.
핵심은 "어떻게 말하는가"보다 "어떻게 듣는가"에 있다.
설교나 가르침을 들을 때 청중은 말하는 사람의 지식의 깊이, 표현의 화려함이나 서툼, 논리, 학벌, 업적에 시선을 빼앗기기 쉽다.
그러나 바울이 강조하는 것은 다르다.
듣는 성도는 말하는 사람이 부족하게 느껴질지라도, 그 안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을 발견하려는 눈을 가져야 한다.
같은 설교를 듣고도 누구는 은혜를 받고, 또 다른 누구는 설교의 단점만 찾아낸다. 작은 말씀 속에서도 하나님의 은혜를 발견하려 애쓰는 태도는 성숙한 신앙의 한 모습이다.
반대로 말씀보다 전달자의 부족함에만 집중한다면, 결국 자신이 받을 수 있는 은혜까지 스스로 놓치게 된다.
종종 강단에 서는 설교자나 간증자가 메시지를 전하면서 반드시 필요하지 않은 이력이나 업적을 강조하는 경우가 있다. 그것이 말씀을 위한 것인지, 자신을 위한 것인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듣는 사람의 태도이다.
그리스도인은 그런 요소들에 휘둘리지 않으면서도 남겨지는 말씀을 분별해야 한다. 그리고 그런 과정에서도 사람을 추종하거나 사람을 기준으로 공동체를 나누기보다, 말씀만 남기려 했던 바울의 태도를 배워야 한다.
결국 성도는 사람의 강함보다 하나님의 능력을 바라보아야 한다.
누군가는 선을 드러내기 위해 자신을 감춘다. 반대로 누군가는 자신을 드러내기 위해 선을 이용한다. 고린도전서 2장에서 바울이 보여 준 길은 '말씀은 드러나고 사람은 뒤로 물러나는 길'이다.
누구보다 논쟁을 잘할 수 있었고, 누구보다 많은 지식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것을 과시하지 않고 십자가를 앞세웠던 바울의 지혜를 배운다.
"내 말과 내 전도함이 설득력 있는 지혜의 말로 하지 아니하고 다만 성령의 나타나심과 능력으로 하여 너희 믿음이 사람의 지혜에 있지 아니하고 다만 하나님의 능력에 있게 하려 하였노라" (고린도전서 2:4-5)
참고할 만한 글: 칼럼 15화 [바울의 수사학 1부] 전술의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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