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의 문맥
교회 안의 우월 경쟁. 고린도전서 3-4장 본문
정황.
당시 고린도는 팍스 로마나 아래에서 재건된 로마의 식민지이자 상업 도시였다. 개인의 능력과 노력으로 신분 상승이 가능했던 사회였고, 그런 환경에서는 어떤 집단에 속해 있는지가 중요한 의미를 가졌을 것이다. 고린도 교회의 파벌도 처음에는 이런 배경으로 이해해 보려 했다.
물론 파벌 형태의 인간관계가 실제로 삶에 얼마나 유익한지는 의문이다. 하지만 효용성과는 별개로 사람은 강한 영향력을 가진 편에 서고 싶어 하는 경향이 있다. 교회든 아니든 영향력 있는 사람을 중심으로 모이고, 자신이 속한 집단을 자랑하고 싶어 하는 심리는 일반적이다.
추가 단서.
고린도에는 수사학적 능력과 철학적 지혜를 경쟁하는 문화가 강했다. 하지만 수사학과 철학적 지혜 자체는 성경을 이해하는 좋은 수단이다. 핵심은 그들이 서로 경쟁했다는 지점이다.
그렇다면 이 교회의 문제는 생존 전략이라기보다 자신이 속한 그룹의 우월함을 확인하고 싶어 하는 욕망에 더 가까웠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리스도인은 어떤 이유로든 파벌을 따를 필요가 없다.
이미 모든 성도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부족함 없는 상속자가 되었기 때문이다.
바울은 "만물이 다 너희의 것"이라고 말한다. 바울도, 아볼로도, 게바도 모두 성도를 위한 하나님의 도구일 뿐이다. 그런데도 고린도 교회는 사람의 영향력을 본질로 여기고 특정 인물을 중심으로 편을 가른다.
이런 모습에는 두 가지 가능성이 보인다.
첫째는 성경적 이해의 부족이다. 바울은 반복해서 사역자는 하나님께서 사용하시는 도구일 뿐이라고 설명한다. 그럼에도 특정 인물을 신앙의 중심에 두는 것은 공동체에 대한 성경의 가르침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한 결과일 수 있다.
둘째는 더 근본적인 문제이다. 만약 몰라서가 아니라면, 세속적 가치관이 말씀보다 더 높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기 때문일 수 있다. 하나님의 자녀로 이미 받은 풍성함보다 눈에 보이는 영향력과 권력을 더 가치 있게 여기는 것이다. 결국 신앙을 세속 권력의 논리로 이해하게 되거나, 자신도 모르게 신앙을 그런 방식으로 사용하게 되는 셈이다. 특히 교만은 열심과 헌신의 그림자처럼 따라오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사역의 형태에 앞서, 말씀 앞에서 자신을 돌아보는 일이 우선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어느 쪽이든 바울은 그것을 육신적인 모습, 미성숙함으로 평가한다.
그렇다면 고린도 교인들이 따르던 사역자는 어떤 역할을 맡아야 할까.
바울은 자신을 "심는 자", 아볼로를 "물 주는 자"라고 부른다. 인간은 하나님의 밭에서 수고하는 일꾼일 뿐이다. 사역자의 본질은 하나님의 식탁에서 말씀을 나누어 주는 하인이자 청지기이다. 생명의 성장은 인간의 능력에 달려 있지 않다. 자라나게 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다.
이어 바울은 자신을 복음의 설계도를 구현한 건축가, 곧 아르키텍톤으로 소개하며 불의 시험을 경고한다. 여기서 불에 타버릴 재료와 타지 않는 재료의 비유가 등장한다.
처음에는 이 비유가 인간의 지혜나 재능 자체를 경계하는 말씀처럼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세련된 소통 능력도, 조직력도, 문화 예술적 감각도 하나님께서 주신 좋은 도구들이다. 문제는 그것이 무엇을 드러내기 위해 사용되는가에 있다.
심지어 화려함 없이 말씀과 영적 사역을 한다 해도, 그 안에 자신을 드러내려는 의도가 섞인다면 결국 타버릴 재료가 된다.
반대로 인간의 지혜와 재능이 그리스도를 드러내고 말씀의 목적을 향하도록 사용된다면 그것은 금과 은과 보석처럼 남게 될 것이다.
그래서 내가 생각하는 중요한 기준은 앞서 잠시 언급했지만, 말씀의 우선 여부이다. 예를 들어 눈길을 끄는 예술을 사역에 접목한다 해도 먼저 말씀의 기초를 단단히 해야한다.
시대가 바뀌면서 형식과 방법도 변할 수 있다. 하지만 말씀이 중심에 서 있을 때 건강하게 사용될 수 있다. 반대로 외형이 아무리 화려해도 말씀보다 사람을 드러내고 감정과 예배를 소비하는 데 집중하게 된다면 결국 본질에서 멀어질 위험이 있다.
바울은 이어 자신을 판단하시는 분은 오직 주님뿐이라고 말한다.
여기서 "판단하지 말라"는 말은 공동체의 죄를 방관하라는 뜻은 아닐 것이다. 바울 자신이 지금 고린도 교회의 문제를 매우 적극적으로 지적하고 있기 때문이다.
오히려 그는 사람을 함부로 정죄하고 자신의 기준으로 재판관 노릇하는 태도를 경계하는 것으로 보인다. 공동체 안에 잘못된 것이 있다면 성경을 기준으로 분별하고 질서를 바로잡아야 한다. 다만 그 목적은 사람을 무너뜨리는 것이 아니라 공동체를 세우는 데 있어야 한다.
고린도 교인들이 사람을 자랑하며 파벌을 나눈 기저에는 일종의 교만이 자리한 것으로 보인다. 그 근거로 바울은 그들을 향해 "이미 왕이 되었도다"라고 풍자한다. 아직 하나님 나라가 완성되지도 않았는데 마치 자신들이 판단자와 통치자가 된 것처럼 행동하고 있었던 것이다.
생각해 보면 사람을 평가하고 우열을 가르는 행위는 단순한 의견 제시의 '선을 넘는 경우'가 많다. 그것은 자신이 그 판단을 내릴 위치에 있다고 여기는 마음과도 연결된다.
그러나 바울은 자신과 다른 사도들이 세상 앞에서 미련한 자가 되었고 약한 자가 되었으며 때로는 세상의 찌꺼기처럼 취급받았다고 말한다.
바울이 말하는 사역자는 권력을 쥔 사람이 아니라 공동체를 위해 먼저 수고하는 사람이었다. 높은 자리에 앉는 사람이 아니라 먼저 낮아지는 사람이었다.
이것은 단순한 겸손의 문제가 아니라 십자가의 방식이다.
결론.
본문은 사람을 높이지 말라는 정도의 교훈에 머물지 않고, 사람을 사람의 자리에 두고 하나님을 하나님의 자리에 두라는 요청을 한다.
파벌은 사람을 하나님의 자리에 올려놓으려는 시도이며, 분별은 그 자리를 다시 하나님께 돌려드리는 일이다.
심는 자도 필요하고 물 주는 자도 필요하다. 그러나 자라나게 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다.
사람의 감정적인 비난과 정죄에 흔들리기보다 말씀이라는 기준으로 분별하며 교회가 넘어지지 않게 질서를 지키되, 최종적인 판단과 심판은 하나님께 맡기는 공동체가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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