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의 문맥
교회의 갈등에 대해. 고린도전서 1장 본문
1. 인사
"하나님이 주신 은혜로 말미암아 내가 너희를 위하여 항상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고린도전서 1:4)
고린도 교회는 이상적인 공동체가 아니었다. 분열, 교만, 갈등이 존재했다.
그런데 바울은 그들을 향해 편지를 책망으로 시작하지 않고, 하나님께서 그들 가운데 이미 주신 은혜를 먼저 언급하며 "성도라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이라고 부른다. 그들에게 문제가 없기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이 포기하지 않으셨기 때문이다. 바울은 그들보다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보았을 것이다.
요셉 또한 마지막까지 자신을 속이는 형제들을 향해 눈물로 화평을 약속했다. 형제들이 신실해서가 아니라 요셉이 그들을 사랑했기 때문이다.
인간은 종종 속한 공동체의 불완전함을 불편해하며, 타인의 부족함을 너무 쉽게 발견한다.
신앙생활을 오래 했음에도 여전히 변화되지 않은 모습을 보며 회의감을 느끼기도 한다.
하지만 성경은 완성된 사람들의 기록이 아니다. 넘어지고 후회하고 다시 회개하고 언약에 붙들리고 또다시 넘어지는 사람들 위에, 하나님의 신실하심이 쌓여 가는 이야기이다. 그리고 공동체의 지향점에 인간의 완전함을 전제로 하는 것 자체가 인간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것이다.
나는 성경을 읽을 때면 '갈등과 재초청'을 거의 기본 전제로 두고 본문을 구분할 정도로, 성경은 그런 구조를 자주 사용한다. 아니, 인간이 그런 구조 안에서 살아가는 것에 가깝다. 그래서 나는 사람의 변화를 너무 쉽게 기대하기보다, 하나님께서 어떻게 이 연약한 공동체를 붙들고 계신지를 먼저 바라보고 싶다.
인간의 연약함은 반복되지만 하나님의 부르심 또한 반복된다.
공동체의 문제를 발견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그러나 공동체 안에 남아 있는 하나님의 은혜를 발견하는 것은 더 깊은 분별을 요구하며, 그 분별을 하지 못할 때 교회 공동체는 힘을 잃는다.
2. 문제 제기
"내 형제들아 글로에의 집 편으로 너희에 대한 말이 내게 들리니 곧 너희 가운데 분쟁이 있다는 것이라" (고린도전서 1:11)
고린도 교회는 분열되고 있었다.
사람들은 "나는 바울에게", "나는 아볼로에게", "나는 게바에게 속했다"고 말하며 파벌을 나눴다.
바울은 그 모습을 보며 "그리스도께서 어찌 나뉘셨느냐"라고 묻는다.
오늘날의 교회도 비슷하다. 장로회, 감리교, 순복음, 침례교 등 교단은 셀 수 없이 많고 지금도 계속 나누어진다.
물론 고린도 교회의 파벌과 현대 교회의 교파는 성격이 다르다. 고린도는 같은 도시 안에서 같은 복음을 두고 특정 인물을 중심으로 파벌을 형성했으나, 현대 교파는 사람이 아닌 역사적, 문화적, 그리고 해석학적 맥락에서 자연스럽게 독립된 경우로 이해한다. 무엇보다 교파가 나누어진 역사 속에서도 하나님은 자신의 뜻을 이루어 오셨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파벌 같은 것을 무분별하게 포용하는 것은 복음의 경계를 허무는 다른 차원의 문제다.
파벌을 인정하면 상대 진영을 정죄하거나, 분열을 위한 논쟁을 벌이거나, 개인의 목적을 위해 종교성을 이용하는 태도까지 용인하는 것과 다름이 없다. 이것은 바울이 말한 사랑이 아니다.
분열 혹은 갈등을 무릅쓰고 문제를 제기해야 할 때도 있고, 공동체를 건강하게 세우기 위해 그것이 필요한 때도 있다.
다만 그 문제 제기가 성경에 근거한 것인지, 공동체를 위한 진심인지를 분별해야 한다.
일반화 오류와 부족한 근거로 검증되지 않은 주장만으로 공동체를 일단 비난하는 태도는, 또 다른 형태의 무질서가 될 수 있다.
교만은 때로 공동체를 무조건 칭찬하는 모습으로 나타나기도 하지만, 반대로 공동체의 부족함만 바라보며 자신을 기준으로 세우는 모습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하나님보다 자신의 판단을 더 신뢰하기 시작할 때 비판 또한 또 다른 교만이 될 수 있다.
문제를 분별하는 것과 자신을 분별의 기준으로 삼는 것은 전혀 다른 일이다.
3. 대안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고린도전서 1:18)
"나는 바울에게", "나는 아볼로에게." 이 말 속에는 결국 자기가 원하는 인간을 따르려는 의도가 있다.
그래서 무언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속내와 더 나은 환경을 만들겠다는 명분 아래, 같은 교파 안에서도 갈라지고 교인들을 회유하여 데리고 떠나며, 자신의 성향에 맞지 않는 공동체가 무너지든 말든 신경 쓰지 않는 모습이 생각보다 자주 보인다.
갈등과 분열을 야기하는 인간의 특성과 유형과 심리학적 분석을 하면 관계 대처에 도움이 되지만, 그것이 성경에서의 핵심은 아니다. 성도는 왜 하나님이 끝까지 그런 인간을 기다리고 사용하시는지에 대해서 더 묵상해야 본질에 맞다.
우리가 붙들어야 할 것은 그리스도 한 분이다.
그분 안에서 우리는 서로의 연약함을 인정하고, 다양한 생각 속에서도 말씀이 이끄는 질서 안에서 하나의 공동체가 되어야 한다.
교회 안에서 문제가 느껴질 때 우리는 그 문제를 직시하면서도 교회의 절차와 소통의 통로를 존중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권위주의는 없어져야 하지만 권위는 필요하다.
갈등 속에서 각자의 입장을 좁히기는 쉽지 않고, 사람이 쉽게 변하지 않거나 변할 의지가 없어 보일 때도 있다. 그럴수록 공동체는 조급히 단정하기보다 그들을 하나님께 맡기고 긍휼의 시선으로 바라보아야 한다. 그러면서도 흔들리지 않게 지혜롭게 질서를 세우고 공동체를 지켜 나가야 한다.
잘하는 것은 격려하고 부족한 것은 함께 고쳐 나가는 과정이 건강한 공동체의 모습이며, 공동체를 향한 비판도 사랑도 필요하지만 비판 자체가 목적이 되어서도, 사랑의 이름으로 문제를 덮어서도 안 된다.
공동체는 변치 않는 완벽한 틀이 아니다. 리더가 넘어질 수 있고 넘어진 자가 리더가 될 수도 있는 곳이다.
영원한 강자도 영원한 약자도 없다. 서로가 넘어질 수 있기에 조금 더 힘이 있는 사람이 이끌어 주는 곳이다.
교회는 서로가 서로의 쿠션이 되어 주는 유기적 연대에 가깝다.
인간은 흔들리고 넘어지기도 한다.
그러나 말씀은 흔들리지 않는다.
말씀으로 상처를 회복하면서 더 숙성된 포도주처럼, 향기를 머금은 우리 공동체가 되기를 바란다.
이 글의 확장: 칼럼 31화 [교회 4부] 파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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