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의 문맥

궤변. 고린도전서 11장 본문

묵상_에세이 [성경의 서사]/고린도전서

궤변. 고린도전서 11장

집사 K 2026. 6. 20. 22:35

교회 안의 어떤 사건에 대해 바울이 답을 주는 흐름이 이어진다.  
당시 상황에 비추어 말씀을 들여다보면 고린도교회 안의 어떤 사람들은 성경에 명시적으로 금지된 내용이 아니라는 이유로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했던 것 같다. 바울은 그들의 논리 이면의 문제를 드러낸다.

바울이 강조하는 것을 토대로 상대의 논리를 보면 대략 이런식이다.
1. 성경은 남자와 여자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라고 말한다.
2. 그렇다면 남녀를 구분하는 관습은 중요하지 않다.
3. 그러므로 기존 질서에 얽매일 필요가 없다.

"그리스도 안에서 여자와 남자가 서로 다르지 않다"라는 성경의 한 명제를 강조하지만, 그 명제에 담긴 연합의 의미는 놓치고 있다. 그래서 "기존의 관습은 더 이상 중요하지 않다"라는 결론은 성경적이라고 할 수 없다. (게다가 정말 구분 없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사람은 일부 특권층이라는 점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그렇다면 그들의 마음에는 사랑보다는 계급 의식이 자리하는 것으로 보는 것이 자연스럽다)

바울은 여기에 대해서 '케팔레'라는 의미를 들어 말한다. 
이 단어 자체에는 '권력에 의한 지배적인 관계의 질서'라는 측면도 있지만, 또 하나의 의미인 '생명의 연합과 생명의 흐름에 따른 기원이라는 질서'를 강조하는 견해도 있다.

하나님, 남자, 여자 이런 순서와 질서가 있다고 말할 때, 시대적 배경떄문에 그것을 계급 질서로 이해했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바울은 지배 구조의 이야기만 하는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오히려 생명의 흐름과 그 연계되는 질서의 측면으로 남자와 여자의 순서를 언급하는데 여기에는 연합의 의미가 담겨 있다고 생각한다.

성찬식에서도 이런 상황은 이어진다.
부유한 그들은 자기들보다 못하다고 느껴지는 사람들이 일찍 오지 못할 것이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다. 거기에 담겨 있는 사회적인 구조적 한계가 있지만 그런 것은 외면한다. 그래서 그들은 다른 이를 기다려야 할 어떤 성경적인 근거를 찾지 못했으니 먼저 먹는 게 뭐가 나쁘냐고 생각했던 것 같다.
바울은 이 논리 이면에 있는 그들의 마음 안의 교만과 차별 의식, 다시 말해 공동체를 구분 짓는 그 의식을 지적한다.

바울은 그들의 전제를 부정하지 않는다. 
남녀가 모두 그리스도 안에서 존귀하다는 것도 맞고, 자유가 있다는 것도 맞으며, 성경이 말하는 사실 자체도 맞다. 그들이 말하는 명제는 틀리지 않다. 대신 그 명제가 놓여 있는 더 큰 맥락을 외면하고 있다는 점이 문제이다.

그들의 논리는 얼핏 합리적으로 보이지만, 논리는 공식으로 답을 내는 계산기가 아니다.
그들은 성경의 절대 전제, 즉 연역적인 추론을 가능하게 하는 더욱 거대하고 논리적인 하나님의 성품이라는 대전제를 놓치고 있다. 성경의 한 부분만을 절대화하고 다른 본문들과 하나님의 성품을 배제한 채 결론을 내린다면, 그 논리는 부분적 진실을 이용해 전체를 왜곡하는 셈이 된다. 그렇다면 그들의 논리는 편향된 전제를 사용한 오류, 즉 궤변이다.

그러니 그들의 논리에 성경의 텍스트를 가져왔다해도, 그것은 성경적이지 않다. 
분별은 지식이 많아야만 가능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구분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는 거기서 느껴지는 온기다. 그들의 말에서 사람을 차갑게 식게 만드는 요소가 있는지가 중요한 기준이 된다. 그렇다고 이성보다 감정적이어야 한다는 말이 아니다. 오히려 그들의 말은 이해가 부족하고 자신의 욕구가 앞서는 감정적인 말이라고 볼 수 있다.

기다림은 논리적인 이해관계를 떠나서, 따뜻한 마음을 공동체 안에서 느끼게 한다.
누군가 먼저 먹을 수 있는 권리가 있음에도 그러지 않고 나를 기다려준다면,
나는 빨리 먹을 수 없는 환경에 처해 있었지만, 누군가 나를 기다려준다는 행위만으로도, 같이 먹기 위해서 좋은 음식을 그저 혼자 소비하지 않고 함께 나누려고 하는 것 자체에서 인간은 이해가 아닌 감동을 한다.

이것은 하나님 안에서 우리가 하나의 가족이라는 것을 어떤 말이나 머리로 설명하고 이해시키기 이전에, 마음으로 먼저 공감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나 또한 어떤 권리를 누려도 상관없는 이유를 찾는 시간을 보냈었던 것 같다. 그런 내게 계산하지 않는 따뜻한 배려를 느끼게 해준 이들이 있었다. 이러한 과정을 거치며, 그리고 이 고린도전서의 말씀을 다시 한번 돌아본다. 하나님의 질서, 그 텍스트의 이면에는 결국 사람을 살리고 기다려주는 하나님의 그 따뜻함이 담겨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