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의 문맥
상실과 성숙. 창세기 35장 본문
야곱의 아들들에 의한 세겜 학살 사건 이후,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야곱은 세겜에서 약탈한 이방 신상을 버리고 정결을 위해 벧엘에 제단을 쌓고 엘벧엘이라 부른다. 하나님이 야곱에게 복을 주시고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으로 확정하신다. 장자 르우벤이 아버지의 첩 빌하와 동침하는 음행을 저지른다. 드보라, 라헬, 이삭이 죽음을 맞이한다.
야곱은 세겜에서의 과거를 청산하고 질서를 되찾을 의지를 보인다. 라반과의 갈등, 에서와의 화해, 세겜의 비극이라는 짙은 안개 지대를 지나, 아내와 부모 세대가 모두 세상을 떠나는 과정 안에서 온전히 하나님 앞에서의 독립된 존재로서 '벧엘', 즉 하나님을 만난 장소를 넘어 그 장소의 주인이신 '엘' 하나님에 집중한다. 그 모든 과정을 통해 성숙해지는 야곱, 이스라엘의 서사가 파란만장하게 펼쳐진다.
야곱은 이제 누군가의 동생, 아들, 남편이 아닌 하나님 앞에서의 한 사람으로 독대하는 순간을 맞이한다. 하지만 이 과정 속에서 그의 가문에는 많은 범죄가 연루되며, 마치 모든 것이 야곱의 성숙이라는 하나의 방향으로 수렴되는 것처럼 쓰여진다.
여기서 한 가지 의구심이 든다. 학살과 가족 내 패륜 등은 각기 그에 맞는 책임을 졌을까?
현대의 사법 처리에 익숙한 내가 보기에는 야곱의 가문이 크고 작은 범죄에 대해 마치 면죄부를 받는 것처럼 축소되어 보이기도 한다.
그래서 여기서는 '하나님은 공의로우시다'라는 명제를 떠올려, 그 시대에 지금보다 책임과 대가를 축소하지 않았다고 전제하고 바라보기로 했다. 각 죄에 대한 책임은 장자권의 상실 및 추방을 암시하는 저주로 연결되고, 이는 생존 공동체와 분리, 축복의 제외, '거룩함의 상실'로 해석된다. 즉 거룩함으로 성숙하거나, 반대로 거룩을 상실하는 것으로 나뉜다. 당시 명예와 추방이 차지하는 존재감은 현대와 비할 바가 아니었을 것이며, 이 사건들은 당시 시대상에 특별히 불공정한 약한 처벌로 비치지 않았을 것 같다.
거룩은 구별됨이다. 하나님의 자녀로서 구별된 삶을 사는 것을 기준으로 죽음의 삶과 생명의 삶이 구분된다. 이것은 즉각적인 처벌은 아닐지라도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이탈, 공동체로부터의 추방을 의미한다. 이것은 결국 즉각적인 형사 처벌보다 더 크다고 할 수 있는 존재론적인 처벌이다.
이번 장은 작지 않은 사건 사고가 많아, 그 파란만장함 속에서 각 단락의 의미가 무엇인지 고민이 되었다. 결국 가장 의문이 드는 화두인 '책임'을 통해 접근하는 것이 도움이 되었다. 이번 장은 행동에 따른 책임 이전에 본질적인 삶의 목적을 떠올리게 한다.
어둠 속에 사는 삶과 빛 가운데 사는 삶으로 나뉘는 것을 보면서, 파란만장한 현실의 어려움 앞에서 질서를 바로잡기 위해 애쓰고 있는지 스스로를 돌아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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