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의 문맥

안개의 정점에서 만난 존재. 창세기 32장 본문

묵상_에세이 [성경의 서사]/창세기

안개의 정점에서 만난 존재. 창세기 32장

집사 K 2026. 5. 30. 18:41

야곱은 가족을 먼저 얍복 나루로 건너게 하고, 홀로 남았다. 밤이 깊어지자 한 사람이 나타나 야곱과 밤새도록 씨름했다. 이 장면은 왠지 안개 속 꿈처럼 느껴진다. 새벽이 되자 그 존재는 야곱의 허벅지 관절을 치며 상처를 주었다. 다리를 절게 되는 것은 그 사건이 꿈이 아니라 현실임을 증거한다.

“나를 축복하지 않으면 보내지 않겠다"라고 매달리는 야곱에게 그는 되레 이름을 묻는다. 
야곱은 스스로 "야곱"이라 말하는데, 마치 "나는 속이는 자이며 발꿈치를 잡는 자입니다"라는 고백으로 들린다. 
그리고 그는 새로운 이름을 받는다. '이스라엘', 곧 하나님과 힘써 겨루어 이긴 자.

여기서 “이겼다”는 말은 하나님을 물리쳤다는 뜻이 아니다. 원어로 ‘sarita’는 ‘끝까지 힘써 매달리다, 포기하지 않고 버티다’는 의미다. 야곱이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과거를 고백하고 축복을 끝까지 구한 의지를 뜻한다. 속임수가 아니라, 약함으로 하나님께 붙들린 승리다.
축복은 때로 상처로 온다. 그리고 상처는 축복을 기억하게 한다.

온전한 두 다리로 도망치던 야곱은 스스로 강하다고 믿었겠지만, 다리를 절며 걷는 야곱은 비로소 하나님의 보호 아래 있는 사람이 된다. 강함이 아니라 의지하는 사람이 된다.

믿음이 있어도 종종 현실의 안갯속에서 헤매게 된다.
말씀과 씨름하며 갈구하는 축복이, 이 자리에 함께 하기를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