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의 문맥
말씀 안에 머무는 부활 신앙. 요한복음 20장 본문
1-18
아직 어두울 때는 영적 무지의 시간과 같다. 마리아는 무덤이 비어 있음을 인지하고 제자들에게 알린다. 베드로와 다른 제자가 달려와 무덤 안을 살피고 세마포가 놓인 것을 자세히 관찰한다. 성경은 그들이 보고 믿었다고 기록하지만, 곧이어 "아직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야 하리라 하신 말씀을 알지 못하더라"라고 덧붙인다. 결국 제자들은 각기 자기들의 집으로 돌아간다. 그러나 마리아는 무덤 밖에 서서 울며 그 자리를 지킨다. 이해되지 않는 상황, 그리고 슬픔에 현장을 떠나지 않고 머무른다. 그때 부활하신 예수께서 마리아를 찾아오신다. 마리아는 점차 예수님을 알아보고 "선생님"이라 부르지만, 예수께서는 "나를 붙들지 말라"고 하신다. 이제 육체적인 접촉을 넘어 영적인 관계로 전환되는 순간이다.
이해되지 않는 지점에서 머물러 울던 마리아에게 주님이 직접 응답하신 것이다.
19-23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예수께서 우리에게 화목의 은혜를 주신다.
"숨을 내쉬며 이르시되."
하나님이 아담에게 숨을 불어넣듯, 우리 안에 새 창조의 생기를 불어넣으신다.
"성령을 받으라. 너희가 누구의 죄든 사하면 사하여질 것이요."
성도에게 신적 대행의 권한이 부여된다.
24-31
"내 손을 넣어보지 않고는." 도마는 예수께 감각적 확증을 요구하고, 예수께서는 그 정직한 질문에 기꺼이 응하신다.
이후 "나의 주님이시요 나의 하나님이시이다"라는 도마의 고백에 대해
예수께서는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이 복되다"고 선언하신다.
이는 앞으로 눈에 보이는 증거가 없더라도,
기록된 말씀의 구조 안에 머무는 것으로 진리라는 실재에 도달할 수 있음을 뜻한다.
기록된 말씀, 즉 로고스에는 하나님의 질서와 섭리가 담겨 있고, 성령 또한 말씀을 통해 임하시기 때문이다.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요 20:31)
이제 우리 성도에게는 기록된 말씀 성경이 있다.
성경을 읽다가 이성적으로 불편하거나 이상한 지점을 만나면, 바로 떠나지 않고 시간을 두고 관찰한다.
당장 이해되지 않더라도 그 자리에 머물러 성령의 도우심을 기다린다.
하나님은 우리의 질문을 외면하지 않으신다.
때론 바로 이해시켜주시고 때론 이해를 넘는 결과로 응답하시는 것 같다는 생각을 종종 한다.
성경의 난제나 불편한 지점에 머무르면 "여기에 네게 줄 보물이 있으니 조금 더 깊게 파보라"는 그분의 말씀이 들리는 것 같다.
성경은 과거에 기록되었지만, 현재의 질문에 응답을 주시기 위해 미래에서 먼저 기다리고 계신다는 느낌을 받는다.
그리고 말씀을 안다는 것은 단순히 지식을 얻는 행위를 넘어, 하나님이 이미 이루신 일을 우리 삶에서 실제로 작동하게 하는 것으로 이어져야 한다.
톰 라이트는 저서 '모두를 위한 요한복음' 주석에서 "무언가를 '실현하는 것'과 '무언가를 이행하는 것' 사이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다"고 말한다.
시계 제작자가 시계를 설계하고 제작하는 것이 '실현'이라면,
시계 주인은 시간을 맞추고 꾸준히 태엽을 감아주어야 하는 '이행'의 책임을 갖는다.
이는 예수께서 죽음과 부활을 통해 구원의 사역을 단번에 실현하셨기에, 우리가 그 구원 자체를 다시 이룰 수는 없음을 뜻한다. 대신 우리는 그가 설계하신 시계의 태엽을 감는 주인처럼 그의 가르침에 순종하며 서로의 발을 씻기듯 중보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그것은 그리스도께서 완성하신 승리가 더 많은 이에게 전달되고 실제로 작동하도록 우리가 이행의 책임을 맡은 것으로 읽힌다. 그 과정에서 이제는 남겨진 기록된 말씀 안에 머물며 말씀을 상대로 질문하고 대화하는 것이 필요하다.
요한복음의 니고데모, 사마리아 여인, 도마의 질문은 무척 구체적이고 솔직했다.
질문은 진리를 향한 필수 과정이다.
그리고 이제 "보지 않고 믿는 자가 복되다"는 말씀대로,
육신의 눈으로 보는 시대는 지났으나, 그래서 더욱 말씀은 여전히 살아있는 생명으로 우리를 변화시킨다.
기도
주님, 말씀 안에서 어두운 지점을 만날 때마다 서둘러 떠나지 않고 그곳에서 좀 더 머무르려 합니다. 자세히 관찰하며 성령이 주시는 통찰을 기다립니다. 과거의 흔적에 연연하지 않고 새 창조의 생기로 인해 모든 이에게 평강이 있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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