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의 문맥

호숫가에서의 식사. 요한복음 21장 본문

묵상_에세이 [성경의 서사]/요한복음

호숫가에서의 식사. 요한복음 21장

집사 K 2026. 4. 18. 15:13

베드로는 세상의 칼을 휘둘러 예수님을 지키려 했고, 세 번 주를 부인했다.
그러나 그 모든 행위와 상관없이 예수님은 조건 없이 베드로를 다시 부르신다. 마치 처음 만났을 때처럼.

주님은 지난 배신의 행위를 따지지 않으신다. 행위 때문이 아니라 존재 자체로 사랑하신다. 이는 빛이 어둠을 심판하기보다 비추는 방식으로 다가오시는 사랑이다.

지금의 베드로는 처음 부름을 받았을 때와는 다르다. 이는 단지 실패를 통해 얻은 겸손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부활을 직접 목격했기 때문이다. 실패의 고난이 신앙의 자양분이 되기도 하지만, 세상의 실패는 대개 더 큰 좌절로 이어지기 쉽다. 그 변화의 본질은 부활에 대한 확신에 있다.

주님은 베드로가 세상으로 도망가 추위 속에서 몸을 녹이던, 그 검게 타들어 가던 숯불 위에 이제 베드로가 먹을 양식을 요리하신다.
요한복음을 여는 로고스, 각 사람에게 선명히 비추던 그 빛은 마지막에 이르러 가장 따뜻한 숯불의 온기가 된다.
이 숯불은 가장 연약한 지점에서 그를 덮어 주는 회복의 자리다. 그리고 세 번의 사랑을 고백하게 하심으로 불신의 트라우마를 녹이시고, 베드로를 신뢰하시며 본인이 실현하신 구원 사역의 이행을 맡기신다.
1장에서 보이지 않는 실재가 감각 가능한 사랑으로 오신 그분은, 21장에 이르러 가장 초월적이면서 동시에 가장 구체적인 온기로 다가오신다.

부활 신앙은 세상 방식으로 칼을 휘두르거나 자기 욕구를 지키려는 삶을 버리고, 로고스의 질서에 참여하는 삶이다.  죽음에서 되살아난 새 창조의 삶으로, 트라우마가 아닌 회복된 존재가 되어 말씀 가운데서 거듭나고 그 생명력을 주변에 전하는 것이 부활 신앙의 본질이라고 믿게 된다.

“육지에 올라보니 숯불이 있는데 그 위에 생선이 놓였고 떡도 있더라.” (요 21:9)

이제 묵상의 흐름은 창세기 22장 모리아산으로 이어집니다. 

창세기 22장